책 비평
1,150페이지의 설교 — 자본과 이데올로기
「자본과 이데올로기」 (Capital and Ideology) · 토마 피케티 (Thomas Piketty) · 옮긴이 안준범 · 문학동네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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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페이지. 책상 위에 놓인 그 벽돌 같은 두께가 먼저 눈을 압도한다.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중세 유럽의 삼기능(三機能) 사회—성직자, 귀족, 노동자—에서 출발하여 19세기 소유권 체제, 20세기 사민주의의 짧은 봄, 그리고 레이건과 대처 이후의 신(新)소유권 질서까지 종횡무진 달린다. 인도 카스트, 브라질 노예제,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까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독자는 이미 지쳤으나, 저자는 멈추지 않는다. 그가 묻는 것은 ‘얼마나 불평등한가’가 아니라 ‘왜 불평등은 지속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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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답은 간명(簡明)하다. 이데올로기. 모든 불평등 사회는 자신의 위계를 정당화하는 서사(敍事)를 필요로 하며, 그 서사가 세법과 상속법과 재산권의 형태로 굳어진다. 프랑스 혁명은 귀족 특권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재산’으로 세탁했을 뿐이다. 영국은 노예주에게 GDP의 5퍼센트를 보상금으로 안겼고, 독립한 아이티는 매년 국민소득의 15퍼센트를 옛 노예주에게 갚아야 했다. 부자는 패배할 때조차 지지 않는다. 20세기 중반의 평등은 두 차례 세계대전과 대공황, 그리고 미국에서 최고한계세율 81퍼센트(1932~1980)라는 극단적 조치가 만들어낸 예외(例外)에 불과했다. 이념이 바뀌자 옛 질서가 돌아왔고, 이번에는 ‘능력주의’라는 정장을 걸치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날카로운 대목은 ‘브라민 좌파 대 상인 우파’라는 진단이다. 1970년대 이후 서구 좌파 정당의 지지 기반은 대졸 전문직으로 이동했고, 노동자들은 투표를 포기하거나 민족주의 우파로 떠났다. 재분배의 정치와 정체성의 정치가 서로를 비켜 지나간다. 피케티는 그 처방으로 ‘참여적 사회주의’를 내놓는다. 최대 재산에 연 90퍼센트 과세, 기업 이사회 절반을 노동자에게, 25세가 되면 모든 시민에게 약 12만 유로의 자본을 증여하라. 급진적이다. 어쩌면 순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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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은 묻는다. 20세기의 평등은 설득이 아니라 전쟁과 혁명과 공황이라는 ‘충격’이 만들었는데, 저자는 왜 이데올로기만 붙드는가? 자본 이동성과 인센티브 문제는 왜 손을 흔들 듯 넘기는가? 그리고 브라민 좌파가 노동자와 멀어졌다는 진단은 바로 저 처방을 실현할 연합(聯合)이 현재 불가능하다는 뜻 아닌가? 피케티는 이 불편한 질문에 명쾌히 답하지 않는다. 그의 믿음은 충분히 설계된 세법이 정치적 위기를 풀 수 있다는 것인데, 그 믿음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그럼에도 이 책을 덮기는 어렵다. 부(富)의 분배가 자연법칙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라는 명제, 그 합의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선언. 피케티가 주류 경제학의 바깥에서 끈질기게 외쳐온 그 문장은 이 시대에 여전히 생경(生硬)하다. 1,150페이지를 다 읽지 못한 나로서는, 적어도 그 문장만큼은 기억해두려 한다—벽돌을 책상 위에 방치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