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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트 클럽」
총구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 파이트 클럽
카메라가 뇌 속을 헤집고 나온다. 신경세포와 시냅스 사이를 관통해, 두개골을 빠져나와, 마침내 입 안에 박힌 총구 앞에 멈춘다. 남자의 입에 총을 물린 채 서 있는 또 다른 남자.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은 이렇게 시작한다. 결말부터 보여주고, 처음으로 돌아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묻는다.
- 「피키 블라인더스」
면도날을 캡 챙에 꿰어 넣은 자들 — 피키 블라인더스
지난주 버밍엄 출장길에 오래된 펍에 들렀다. 벽에 1920년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석탄 분진이 뿌옇게 앉은 거리, 납작모를 깊이 눌러쓴 남자들. 그 사진 아래 작은 팻말이 있었다. "피키 블라인더스가 이 동네를 지배했다." 나는 맥주잔을 내려놓고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전쟁에서 돌아온 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를 점거했던 시절. 스티븐…
- 「좋은 친구들」
트렁크 속 괴성, 그리고 우리 — 좋은 친구들
한밤의 고속도로. 차 트렁크에서 둔탁한 쿵쿵 소리가 새어나온다. 세 남자가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자, 피투성이 사내가 손을 뻗는다. 칼이 내리꽂히고, 총성이 울린다. 화면이 정지되며 내레이션이 흐른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난 늘 갱스터가 되고 싶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좋은 친구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설계된 눈물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이 영화를 "20년간 이 캐릭터를 본 관객에게 감정 반응을 촉발하도록 과학적 정밀함으로 설계된 작품"이라 불렀다.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나는 바로 그 20년의 관객이기 때문이다. 2002년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부터 모든 버전을 챙겨봤고, "설계된 감정"에 눈물을 흘렸다는 건 굴욕적이다. 하지만 흘렸다. 영화관에서,…
- 「더 보이즈」
슈퍼맨이 사이코패스라면 — 더 보이즈
어릴 적 나는 슈퍼맨을 진심으로 믿었다. 하늘을 나는 빨간 망토, 총알도 튕겨내는 가슴팍, 그리고 악을 용서하지 않는 정의로움. 그런데 언젠가부터 의문이 싹텄다. 저 남자, 왜 안 늙지? 저렇게 강한 존재가 왜 하필 기자로 위장해 살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가진 자가 과연 '선'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아마존의 시리즈 '더 보이즈'는 정확히 그…
- 「트로이」
규모(規模)가 곧 위대함인가 — 트로이
1억 7500만 달러. 배 천 척이 해변을 메우고, 수만의 군사가 평야를 가로지르며, 163분의 러닝타임 동안 고대 트로이의 성벽이 무너지는 데 투입된 금액이다. 볼프강 페터젠의 '트로이'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스케일은 언제 감동이 되고, 언제 공허가 되는가.
- 「28년 후: 본 템플」
좀비가 문제가 아니다 — 28년 후: 본 템플
물론 분류표에는 호러라고 적혀 있고, 피가 튀고, 감염자들이 뛰어다닌다. 하지만 니아 다코스타가 만든 이 두 번째 영화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스물여덟 해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세대가 자라면 어떤 신앙이 태어나는가. 트라우마는 어떻게 의식으로 굳어지는가. 공포는 어떻게 종교가 되는가.
- 「F1」
브래드 피트에게 — F1
당신이 61세에 실제 F1 머신을 몰기 위해 수개월간 드라이빙 훈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톰 크루즈가 '탑건: 매버릭'에서 직접 전투기 조종석에 앉았던 것처럼, 당신도 스턴트맨에게 얼굴을 빌려주는 대신 200마일 속도의 공포를 온몸으로 받아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얼리치는 이 영화를 두고 "눈을 현혹하면서 뇌는 중립 기어에…
- 「돌이킬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영화는 끝나고 나서 좋았는지 나빴는지 판단할 수 없다.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이 그렇다. 이 영화를 좋다고 말하면 취향을 의심받고, 나쁘다고 말하면 이해력을 의심받는다. 그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절대반지가 사라진 뒤, 남는 것 —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물속으로 빠져드는 금빛 고리 하나. 스미골의 손가락이 데아골의 목을 조르는 순간, 피터 잭슨의 카메라는 반지를 향한 인간(혹은 호빗)의 욕망이 얼마나 추악한 형태로 귀결되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이 회상으로 문을 연다. 뉴욕타임스의 A.O. 스콧은 이 3부작을 "최근 기억에서 가장 야심 찬 영화적 시도"라 평했는데,…
- 「아바타」
판도라의 숲, 자본의 불도저 앞에 서다 —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 이후 12년간 침묵했다.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심해 탐사선을 타고 바다 밑바닥을 누볐고,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만들어냈으며, 컴퓨터 앞에서 단 한 프레임의 이미지를 위해 수천 번의 렌더링을 반복했다. 할리우드는 그를 잊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
- 「세븐」
'세븐',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1] 영국 《사이트 앤 사운드》의 에이미 타우빈은 이 영화의 결말을 두고 "관객을 폭력의 공범으로 만든다"고 썼다. 맞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은 두 시간 동안 우리를 범죄 현장으로 끌고 다니더니, 마지막엔 손에 피를 묻힌 채 극장 밖으로 내보낸다. 우리가 입장료를 내고 이 참혹을 구경하러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듯이.
- 「토이 스토리」
장난감의 불안, 혹은 대체 가능성의 공포 — 토이 스토리
'토이 스토리'는 어린이 영화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만을 위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뉴욕 타임스》의 자넷 매슬린은 이 영화를 두고 "우정과 경쟁에 대한 놀랍도록 정교한 이해"라 평했는데,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다. 이것은 대체 가능성에 대한 공포를 다룬, 성인을 위한 심리극이다.
- 「쉰들러 리스트」
재현(再現)의 자격 — 쉰들러 리스트
《사이트 앤 사운드》의 Geoffrey Macnab은 <쉰들러 리스트>를 두고 이렇게 물었다. "영화의 본질적인 미학화가 이해를 초월하는 사건에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가?" 1993년에 제기된 이 질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답을 기다린다. 어쩌면 답이 없다는 것이 답일지 모른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불가능성을 알면서도 카메라를 들었다. 상어,…
- 「다크 나이트」
**1** — 다크 나이트
어떤 영화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고들 말한다. 나는 이 표현을 오래 경계해왔다. 대개 그 말의 속뜻은 "이 영화는 당신이 무시해온 장르인데 의외로 괜찮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치고는 깊다, 공포영화치고는 잘 만들었다—칭찬인 척하는 편견이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를 다시 보고 나니, 나 역시 결국 비슷한 말을 하게…
- 「대부」
어둠 속에서 시작되는 미국의 자화상 — 대부
화면이 열리면 보이는 것은 거의 없다. 어둠이다. 극도로 억제된 조명 아래, 한 남자의 얼굴만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그는 딸의 결혼식 날, 딸을 폭행한 남자들에게 복수해 달라고 청탁하러 왔다. 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카메라는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그제야 우리는 이 남자가 누군가의 앞에 앉아 있음을, 그 '누군가'가 모든 것을 들으며 고양이를 쓰다듬고…
-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피터 잭슨의 도박** —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이 영화는 실패해야 마땅했다. 뉴질랜드 출신의 B급 호러 감독이 20세기 영문학의 성전(聖典)을 건드리겠다고 나섰을 때, 전 세계 톨킨 신자들의 반응은 분노와 조롱 사이 어딘가였다. 원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 소설을 영상으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도박인지.
- 「모아나 2」
바다는 여전히 부르는가 — 모아나 2
섬 끝에 선 소녀의 실루엣이 보인다. 파도가 발밑에 부서지고, 바람이 검은 머리카락을 수평선 쪽으로 밀어낸다. 8년 전 같은 자리에서 그녀는 "얼마나 멀리"를 노래했다. 이제 그녀는 성인이 됐고, 항해사가 됐고, 지도자가 됐다. 그런데 왜 다시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곳을 바라보는가. '모아나 2'는 이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장면이 품은 불안이…
- 「기묘한 이야기」
던전의 아이들, 그리고 우리의 잃어버린 지하실 — 기묘한 이야기
1983년 인디애나 주, 어느 교외 주택의 지하실. 형광등 불빛 아래 네 명의 소년이 던전스 앤 드래곤스 보드판을 둘러싸고 앉아 있다. 주사위가 탁자 위를 굴러간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이제 그만 올라와"라고 외치고, 소년들은 자전거를 타고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그중 한 명이 집에 도착하지 못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춤을 멈출 수 없었던 남자가 남긴 마지막 리허설 —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
케니 오르테가 감독은 잭슨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한다. 2009년 6월,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의 리허설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잭슨은 무대에서 내려오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음향 담당자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그 부분, 좀 더 천천히 끓여봐요(Let it simmer)." 요리할 때 쓰는 표현이었다. 밴드가 연주한 'Human Nature'의…
- 「마이 폴트」
마이 폴트: 빨간불이 초록불이 되는 세계
이 영화는 성공했다. 아마존이 개봉 전에 속편을 확정했고, 원작 팬덤은 이미 3부작 완주를 기정사실화한다. 그런데 그 성공이 바로 문제다. 《마이 폴트》는 왓패드에서 태어나 베스트셀러로 자란 메르세데스 론의 소설을 스페인에서 영화화한 작품이다. 의붓오빠와 의붓여동생의 금지된 사랑. 도미니고 곤살레스 감독은 타겟 인구통계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
퇴행의 완성 —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
1977년, 미국 영화는 퇴행했다. 《스타워즈》는 그 퇴행의 완성이다. 《대부》와 《택시 드라이버》가 열어젖힌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복잡성, 도덕적 모호함, 어른의 영화를 조지 루카스는 단번에 뒤집었다. 대신 그가 꺼낸 것은 1930년대 《플래시 고든》 시리얼, 《오즈의 마법사》, 아서왕 전설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유치하다. 의도적으로, 전략적으로,…
- 「탑건」
미소의 물리학 — 탑건
톰 크루즈가 상관에게 위험한 곡예를 부리고 나서 씩 웃는 순간이 있다. 자신만만하고, 소년 같고, 불복종 직전의 미소. 당시 《뉴욕 타임스》의 재닛 매슬린은 그걸 보고 "영화 전체가 하나의 길고 값비싼 미소"라고 썼다. 매력적이고, 얕고, 완전히 거부하기는 어려운.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동의했다. 그리고 또 그 미소에 속았다.
- 「브레이킹 배드」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브레이킹 배드
영국 《가디언》의 마크 로슨은 이 드라마를 두고 "토니 소프라노는 폭력 속에서 태어났지만, 월터 화이트는 폭력을 선택했다"고 썼다. 그 한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태생과 선택. 이 차이가 왜 그토록 불편한가.
- 「유포리아」
무한 접속의 고독, 네온 아래 쪼그라드는 영혼들 — 유포리아
1. 화면이 번진다. 어린 소녀가 알약을 삼키고, 세상이 처음으로 조용해진다. HBO 드라마 '유포리아'의 주인공 루(젠데이아)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으로 평화를 찾았다." 중독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의식이 견딜 수 없을 때 왜 무의식을 선택하는지, 그 절박한 심리를 해부하는 첫 장면이다.
- 「와일드 로봇」
단풍잎과 회로 사이 — 와일드 로봇
기계가 그리움을 학습할 수 있을까.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얼리히가 이 영화의 핵심을 짚었다. 가을 낙엽이 휘날리는 숲 속에서 로봇 로즈가 홀로 서 있다. 입양한 새끼 기러기가 비행 연습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장면. 기다림을 픽셀과 폴리곤으로 구현한 그 장면에는 실사가 닿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 「타이타닉」
침몰(沈沒)의 역학 — 타이타닉
잠수정의 조명이 해저 3,800미터를 훑는다. 80년 묵은 녹슨 선체가 어둠 속에서 윤곽을 드러낸다. 카메라가 창문을 뚫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흩어진 도자기 파편과 찌그러진 금속 프레임이 보인다. 그 위로 소녀의 누드 데생이 천천히 화면에 잡힌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은 그렇게 시작한다. 죽음의 바닥에서 사랑의 흔적을 건져 올리는…
- 「왕좌의 게임」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B. 와이스에게 — 왕좌의 게임
판타지는 이 땅에서 오래도록 유아용 장르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고무 괴물과 합판 성벽, 말이 안 되는 설정. 그런데 당신들이 『왕좌의 게임』으로 해낸 것은 판타지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한 행위입니다. 용과 드래곤이 나오는데 이것이 장미전쟁 시대 영국 궁정극처럼 느껴지다니요. 성공이 아니라 장르에 대한 배반(背叛)입니다.
- 「쇼생크 탈출」
교도소에서 모차르트를 — 쇼생크 탈출
[1] 어릴 적 텔레비전 영화채널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다. 한밤중이었고, 중간부터 봤다. 줄거리도 제대로 모른 채 끝까지 봤다. 다음 날 학교에서 졸았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설명이 안 된다. 팀 로빈스가 교도소 스피커로 오페라를 틀고, 죄수들이 운동장에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장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만은…
- 「듄」
미완이기에 완성된 영화 — 듄
회색 바다가 절벽 아래서 출렁인다. 폴 아트레이데스가 고향 행성 칼라단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 그는 아직 사막을 모른다. 예언이 자기 삶을 집어삼킬 줄 모른다. 멀리서 파도 소리만 들린다. 드니 빌뇌브의 《듄》은 이 정적의 순간에서 시작한다. 움직임이 아니라 침묵으로, 액션이 아니라 대기의 무게로. 《버라이어티》의 오웬 글라이버먼은 이 영화를 "모래와…
- 「햄넷」
부재의 언어 — 햄넷
지난주에 셰익스피어 전기물을 또 봐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솔직히 한숨부터 쉬었다. 깃펜 들고 고뇌하는 천재, 영감이 번쩍 내리꽂히는 극장, 엘리자베스 시대 복식의 향연. 이 공식을 몇 번이나 더 봐야 하나. 그런데 클로이 자오의 「햄넷」은 그 공식을 처음부터 거부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거의 말이 없고, 그 유명한 독백은 단 한 줄도 들리지…
-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 시간의 건축가가 설계한 청문회
놀란은 줄곧 시간의 구조에 집착해왔다. 〈메멘토〉의 역행, 〈인터스텔라〉의 상대성, 〈테넷〉의 역전. 이번에 그 기술이 향한 곳은 1954년의 보안 청문회장이다. 영화는 컬러와 흑백을 교차하며 두 시간대를 오간다. 하나는 오펜하이머의 심판, 다른 하나는 그를 심판한 루이스 스트로스의 심판. 이 이중 구조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다. 《버라이어티》의 오웬…
- 「세크리터리」
세크리터리
BDSM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망하게 되어 있다. 선정성에 기대 마케팅을 하거나, 진지한 척 병리학 강의를 늘어놓거나. 둘 중 하나로 빠진다. 《뉴욕타임스》의 A.O. 스콧은 스티븐 셰인버그의 <세크리터리>를 "진정으로 도발적이면서 무장해제할 만큼 달콤한" 영화라고 썼다. 도발과 달콤함이 공존하는 영화. 나는 그게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 「포레스트 검프」
《포레스트 검프》는 할리우드가 만든 가장 교활한 보수 판타지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가? 그렇다.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 혁신적인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톰 행크스를 케네디, 존슨, 닉슨 곁에 디지털로 합성해 넣는 시퀀스는 1994년 기준으로 경이롭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직한가? 아니다.
- 「문워커」
문워커: MTV 시대의 가장 값비싼 자기모순
이 영화는 실패했다. 상업적으로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그렇다. '문워커'는 뮤직비디오를 장편 극영화로 늘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대규모 실험이었고, 그 실험은 정확히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좌초했다. 27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경악스러운 제작비, ILM의 최첨단 특수효과, MTV가 키운 스타의 절정기 권력. 이 모든 것이 결집했음에도…
- 「노스페라투」
어둠을 응시하게 만드는 방법 — 노스페라투
내가 좋다고 생각한 영화의 목록은 일관성이 없다. 싫다고 단정한 영화에서 종종 좋은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를 평가할 때 나는 질문을 바꾸는 쪽을 택한다. 이 영화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얻었는가.
- 「존 오브 인터레스트」
담장 위에서 해바라기를 가꾸는 사람들 — 존 오브 인터레스트
[1] 화면이 까맣다. 3분 동안 까맣다. 미카 레비의 전자음향이 마치 거대한 기계가 깨어나는 소리처럼 극장을 채우는 동안, 관객들은 무엇이 보일지 기다린다. 마침내 밝아지는 화면 속에선 아버지와 아이들이 강가에서 피크닉을 즐긴다. 햇살이 좋다. 물이 맑다. 개가 뛰논다. 이윽고 가족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카메라가 뒤따르다 보니 저 담장…
- 「프리티 리썰」
포인트 슈즈에 묻은 피, 또는 신체의 문법 — 프리티 리썰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석양이 길게 늘어진다. 버스 안, 젊은 여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지쳐 있다. 누군가는 다리를 쭉 뻗어 스트레칭하고, 누군가는 헤드폰 너머의 음악에 빠져 있으며, 누군가는 옆자리 동료와 낮은 목소리로 험담을 주고받는다. 발목에 감긴 테이프, 젖은 레오타드 위로 덧입은 후드티, 트렁크 가득 쌓인 토슈즈 가방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 「미키 17」
봉준호의 가장 멍청한 영화 — 미키 17
이 문장을 곱씹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봉준호는 「설국열차」에서 계급을, 「옥자」에서 육식 산업을, 「기생충」에서 한국 사회의 위아래를 해부했다. 그의 풍자는 늘 날카롭고 복잡했으며, 관객에게 단순한 답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우주 식민지를 배경으로, 빨간 모자를 쓴 독재자가 광신도 무리를 거느리고 등장한다. 마크 러팔로가…
- 「헌팅 시즌」
도망칠 곳이 없다 — 헌팅 시즌
[1] 아르헨티나 황야다. 나무들 사이로 안개가 낮게 깔린다. 중년 남자가 딸에게 덫 놓는 법을 가르친다. 손놀림이 느리고 정확하다. 딸은 지루한 표정이다. 세상과 단절한 아버지, 세상이 궁금한 딸. 둘의 평화는 피 묻은 여자가 숲에서 기어 나오는 순간 산산이 부서진다. 클라우디오 보이비안 감독의 '헌팅 시즌'은 이렇게 시작한다.
- 「어벤져스」
앙상블의 무게, 혹은 블록버스터가 캐릭터를 믿을 때 — 어벤져스
쉴드 연구 시설의 지하. 푸른빛이 감도는 큐브가 스스로 맥동하기 시작한다. 비상등이 점멸하고 과학자들이 황급히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사이, 공간이 찢어지듯 열리며 한 남자가 등장한다. 로키. 그는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요원들의 의지를 빼앗고 테서랙트를 손에 쥔다. 시설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그의 표정은 태연하다. 이 순간 닉 퓨리가…
- 「데드풀과 울버린」
망가진 영웅들의 시대 — 데드풀과 울버린
1. 라이언 레이놀즈가 양복 차림으로 중고차 세일장에 서 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 화려한 빨간 슈트는 옷장 깊숙이 처박혀 있고, 입에서는 "이 차 정말 좋습니다, 전 오너가 할머니였어요"라는 딜러 특유의 거짓말이 줄줄 흘러나온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웅의 시대가 끝났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영웅이 필요…
- 「마이클 잭슨: 더 라이프 오브 아이콘」
가족이 만든 초상화 앞에서 — 마이클 잭슨: 더 라이프 오브 아이콘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진실과 사랑 사이의 긴장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족이 그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를 원할까, 아니면 자신들이 알았던 가장 좋은 모습으로 남기기를 원할까. 앤드류 이스텔의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 더 라이프 오브 아이콘》은 이 질문 앞에서 후자를 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이 작품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
- 「슈렉」
녹색 피부의 반란, 혹은 동화의 사후 세계 — 슈렉
마이크 마이어스는 이미 녹음을 거의 마친 상태였다. 캐나다 출신 코미디언 특유의 평범한 북미 억양으로 슈렉의 대사를 완성해가던 중, 그는 돌연 방향을 틀었다.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전면 재녹음하겠다는 것이었다. 드림웍스 경영진은 경악했다. 이미 투입된 제작비와 일정을 생각하면 무모한 요구였다. 그러나 마이어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 초록 괴물에게…
- 「더 브루탈리스트」
콘크리트의 무게, 견딤의 무게 — 더 브루탈리스트
지난주 청담동 어딘가에서 오래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보았다. 벽면의 거푸집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세월에 닳아 군데군데 철근이 드러나 있었다. 한때 그 거친 표면이 실험적이고 전위적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저 낡은 건물이다. 브래디 코베이 감독의 '더 브루탈리스트'를 보며 그 건물이 자꾸 떠올랐다.
- 「펄프 픽션」
재활용의 연금술 — 펄프 픽션
햇살이 쏟아지는 LA의 다이너. 테이블 위에는 커피와 담배 연기. 팀 로스와 아만다 플러머가 마주 앉아 있다. 둘은 은행 강도의 비효율성에 대해 논쟁한다. 레스토랑이 더 낫지 않겠어? 손님들은 영웅 흉내를 안 내거든. 대화는 느긋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두 사람이 총을 뽑아 든다. "Everybody be cool, this is a robbery!"…
- 「그린 마일」
기적을 목격한 자의 의무 — 그린 마일
[1] 3시간 9분.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그린 마일'(1999)이 요구하는 시간이에요. 1935년 루이지애나주 콜드마운틴 교도소 사형수 감방, 그 좁고 눅눅한 복도를 오가는 간수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데 필요한 인내의 양이죠. 요즘 같은 숏폼 전성시대에 관객에게 이 정도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려면 얼마나 도발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까요? 이 영화의…
- 「8번 출구」
출구가 없는 사람들 — 8번 출구
1 미국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얼리치는 이 영화를 두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의 공포, 그리고 기울이지 못하는 것의 더 큰 공포"라고 썼다. 인디 게임 개발자 코타게가 만든 바이럴 게임 '8번 출구'를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형광등 아래 무한 반복되는 지하철 통로를 배경으로 한다. 이름 없는 샐러리맨이 끝없이 같은 복도를 걷는다. 탈출 조건은 단…
- 「코렐라인: 비밀의 문」
버튼 눈을 거부한 아이, 불완전한 세계를 선택하다 — 코렐라인: 비밀의 문
어릴 적 밤마다 읽던 그림책이 있었다. 어머니가 다정하게 읽어주시던 그 이야기 속에는 으레 마녀가 등장했고, 숲이 있었고, 아이가 길을 잃었다. 무서웠지만 덮을 수 없었다. 그 공포가 이상하게 달콤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동화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세상의 어둠을 아이들에게 미리 맛보게 하되,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장치. 헨리 셀릭…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92분짜리 승리 행진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가디언》의 벤저민 리는 이 영화를 "92분짜리 승리 행진"이라 불렀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든다. 문제는 행진이 끝나고 남는 게 뭐냐는 거다.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효율의 손가락, 칼질의 시대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미국 《버라이어티》의 오언 글라이버먼은 타노스를 두고 "비극적 위엄(tragic grandeur)"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주 생명체 절반을 소멸시키겠다는 광기 어린 목표를 품은 보랏빛 괴물에게 '비극'이라니. 그러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수사가 과장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세요. 조시 브롤린이 연기한 이 디지털 거인은…
- 「드라큘라」
드라큘라, 애도(哀悼)의 형식으로 쓴 잔혹사
영화 중반, 저주받은 블라드가 훼손된 제단 앞에 선다. 촛불이 꺼진 성당. 그는 더 이상 응답하지 않을 신에게 말을 건넨다. 목소리는 떨리고, 얼굴은 음영 속에 파묻혀 있다. 카린 쿠사마 감독의 '드라큘라'는 이 한 장면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분명히 선언한다. 이것은 공포영화가 아니다. 비극이다.
- 「주토피아 2」
바이런 하워드 감독께 — 주토피아 2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얼리히는 이렇게 썼다. "첫 번째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하라고 요청했다. 이 영화는 대부분 느끼라고 요청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키보드 위에서 손을 뗐다. 정확히 내가 쓰려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호그와트의 밀폐된 공기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어릴 적 나는 백과사전을 통째로 영화화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ㄱ부터 ㅎ까지, 가나다순으로 세상 모든 항목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기획. 당연히 그런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질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을 담으려는 욕심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 「인사이드 아웃 2」
'인사이드 아웃 2': 불안은 적인가, 동지인가
켈시 만 감독은 픽사 내부에서 10년을 준비했다. 스토리 수퍼바이저로 '몬스터 대학교'와 '굿 다이노'를 거치며 이 회사의 문법을 체득했다. 그가 첫 장편으로 전작의 속편을 택한 건 무모한 선택이었다. 2015년 피트 닥터가 만든 원작은 감정의 시각화라는 측면에서 이미 완결된 세계였다. 거기에 뭘 더 붙인다는 말인가.
- 「영 앤 뷰티풀」
설명하지 않을 권리 — 영 앤 뷰티풀
프랑수아 오종의 「영 앤 뷰티풀」은 실패한 영화다. 17세 소녀가 왜 몸을 팔기 시작했는지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 트라우마도 없고, 가정폭력도 없고, 경제적 궁핍도 없다. 파리 상류층 가정의 예쁜 딸이 어느 여름 처녀성을 잃고, 가을이 되자 호텔 방에서 중년 남자들을 만난다. 왜? 영화는 모른다고, 혹은 말하지 않겠다고 답한다. 「버라이어티」의 피터…
- 「이니셰린의 밴시」
손가락을 자르는 남자, 대화를 포기하는 우리 — 이니셰린의 밴시
지난봄, 오랜 벗과 연락이 끊겼다. 다툰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주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를 묻는 메시지에 그는 딱 한 줄만 남겼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한동안 그 문장을 들여다보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니셰린의 밴시」를 보는 내내 그 메시지가 떠올랐다.
- 「모탈 컴뱃」
착공식의 미학 — 모탈 컴뱃
눈이 내린다. 17세기 일본, 대나무 숲 사이로 한 무사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카메라는 느긋하게 그 정경을 훑는다. 그리고 서리가 창문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찬 기운이 이상하다 싶은 순간, 푸른 갑옷의 사내가 나타나 순식간에 가족을 도륙한다. 피가 땅에 닿기 전에 얼어붙는다. 무사는 정원 도구로 맞서 싸우다 결국…
- 「매트릭스」
전과서의 완성 — 매트릭스
1999년 봄, 나는 극장에서 캐리앤 모스가 벽을 타고 뛰는 장면을 보았다. 그 순간 물리학 교과서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릿타임이라 불리게 될 그 기법 앞에서 시간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정지된 육체 주위를 유영하는 동안 관객들은 숨을 참았다. 워쇼스키 형제가 만들어낸 이 효과는 액션…
- 「패스트 라이브즈」
호수 위에 뜬 달을 건지려는 사람들에게 — 패스트 라이브즈
[1]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내 한국계 이민자 수는 약 190만 명이에요. 그중 상당수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건너가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서 자아를 두 번 구축한 사람들이죠.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는 바로 그 틈새에서 태어난 영화예요. 서울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캐나다로 이주한 나영(노라)이라는 여자가…
- 「쇼군 (Shōgun)」
전쟁을 하지 않는 전쟁 드라마 — 쇼군 (Shōgun)
「쇼군」 피날레를 처음 본 그날, SNS에 뭐라고 쓸까 한참 고민했다. 시즌 2 촬영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그 마지막 회를 떠올린다. 전쟁 드라마가 전쟁을 안 했다. 토라나가와 이시도의 대군은 결국 충돌하지 않았고, 승부는 한 통의 편지와 한 번의 자살로 갈렸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결국 아무것도 올리지 못했다. 뭔가를 쓰려면 먼저 내가…
- 「아임 스틸 히어」
아임 스틸 히어,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
[1] 월터 살레스의 「아임 스틸 히어」는 137분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만들어 놓고, 극장을 나선 뒤에야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내가 설명하지 못한다는 건, 좀 불쾌한 일이다.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패했다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는 실패작이다. 적어도 그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는. 여든을 넘긴 노인이 「바람이 분다」(2013)로 이미 완벽한 유서를 써 놓고서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이유는, 제 죽음을 제 손으로 통제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통제되지 않는다. 노인은 자신의 카논에서 가장 값비싼 조각들—센과…
- 「추락의 해부」
'추락의 해부' — 법정이 심판할 수 없는 것
[1] 프랑스 알프스 산장. 인터뷰를 마친 여자 작가가 2층에서 창밖을 본다. 그녀의 남편 시체가 눈밭에 엎어져 있다. 피가 하얀 눈 위에 번진다. 개가 짖고, 시각장애인 아들이 지팡이를 짚으며 현관으로 나선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이렇게 시작해요. 남편은 추락했는가, 추락당했는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이…
- 「듄: 파트2」
좋은 예언은 실현되지 않는다 — 듄: 파트2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답을 피해왔다. 정의를 내리는 순간 예외가 생기고, 예외를 인정하면 정의가 무너지니까. 그런데 《듄: 파트2》를 보고 나서는 좀 다른 방식으로 묻게 된다. 좋은 영화는 관객을 어디에 데려다 놓는가. 승리의 광장인가, 패배의 언덕인가, 아니면 둘 다 아닌 어떤 불안정한 경사면인가.
- 「마이클」
팝의 왕은 언제 죽었는가 — 마이클
안톤 후쿠아는 흑인 액션 스타를 가장 잘 찍는 감독으로 불려왔다. 덴젤 워싱턴을 '트레이닝 데이'로 오스카에 올렸고, 동시에 그를 '이퀄라이저' 시리즈의 노년 액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가 마이클 잭슨의 전기 영화를 맡았다. 주연은 자파 잭슨, 마이클의 조카이자 저메인 잭슨의 아들이다. 조카가 삼촌을 연기한다. 혈연이 분장을 대체하고, DNA가…
- 「아노라」
유리구두는 원래 벗겨지게 생겼다 — 아노라
지난주에 〈프리티 우먼〉을 다시 틀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추천해서. 35년 된 영화를 보면서 나는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줄리아 로버츠는 정말 예뻤다. 둘째, 나는 이 영화의 해피엔딩을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다. 리처드 기어가 리무진을 타고 돌아오는 장면에서 심장이 뛴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건 그냥 동화니까. 문제는 그…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옷자락이 닳은 향수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20년 만의 속편. 향수의 옷자락이 닳긴 했지만, 옷의 형태는 살아있다. 좋은 속편의 흔치 않은 운명.
- 「프로젝트 헤일메리」
협력은 인간의 일이 아니다 — 프로젝트 헤일메리
「프로젝트 헤일메리」(2026)는 한 가지를 묻는다. 협력은 정말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인간이 가장 못하는 일인가.
- 「비발디와 나」
비발디와 나: 어깨 위에 손 하나, 그것만으로
베네치아 운하의 탁한 물. 자루가 수면을 친다.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들이 있다. 새끼 고양이들이다. 자루는 천천히 가라앉는다. 카메라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18세기 베네치아의 고아원,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 그곳은 동화 속 요람이 아니다. 다미아노 미키엘레토 감독의 '비발디와 나'는 첫 장면부터 관객의 낭만적 기대를 수장(水葬)시킨다. 고아원은…
- 「프로메테우스」
거장의 야심, 그리고 빠진 한 가지 — 프로메테우스
리들리 스콧의 거장다운 야심작에 빠져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에이리언」(1979)이 가졌던 결정적인 한 방.
함께하는이
영화의 세 시선
- 차은 車隱 — 전직 영화담당 기자
차은의 무비홀릭
외국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작은 매체여서 영화리뷰는 언제나 막내인 나의 일. 오랜 타지 생활에도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영화로 우리 시대와 사회를 들여다본다.
- 무진 霧津 — 출판 편집자 · 칼럼니스트
무진의 시네마 노트
책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다시 책으로 건너간다. 특이할 수도 있는 나만의 시선으로 분석한 글을 매일 쓴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드는 글만 올린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가장 좋아한다.
- 방주 傍註 — SF 웹소설 작가
방주의 장르 일기
SF 웹소설을 쓰며 장르 영화와 OTT 시리즈의 옆에서 주석을 단다. 짧은 호흡의 글을 좋아한다. 신상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 가끔은 나 아닌 것 같은 글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