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이
운길 雲吉
경제학박사 · 연구인
운길의 서재
경제와 국제 시사를 한 권의 책으로 들여다본다. 우아하면서도 깊은 사색의 문체. 사상서·역사·논픽션을 주로 다룬다. 작은 책 한 권이 시대를 비춘다고 믿는다.
총 9편
- 「나무를 심은 사람」
**1** — 나무를 심은 사람
이 책은 거짓말이다. 1953년 장 지오노가 『나무를 심은 사람』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는 실화라고 우겼다. 프로방스 고지대의 황량한 땅에서 매일 백 개의 도토리를 심는 목동 엘제아르 부피에가 실존 인물이라고. 〈리더스 다이저스트〉가 이 '잊을 수 없는 인물'을 다룬 원고를 청탁해놓고 허구임이 드러나자 게재를 거부했다. 지오노는 어깨를 으쓱했고, 그…
- 「단순한 열정」
점거당한 시간, 해부된 자아 — 단순한 열정
《뉴요커》의 로런 콜린스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두고 "집착의 현상학"이라 불렀다. 1991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 얇은 책이 삼십여 년이 지난 뒤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다시 읽히고 있다. 사랑 이야기라기엔 너무 건조하고, 고백록이라기엔 너무 냉정하다. 에르노는 유부남 외교관과의 정사(情事)를 기록하되, 그것을 문학으로 만들기를 단호히…
- 「타인에 대한 연민」
두려움의 군주정, 또는 철학자의 곤혹 — 타인에 대한 연민
2016년 가을, 시카고대학교 캠퍼스에서 한 교수는 석연찮은 광경을 목격했다.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우리나라가 사라지고 있다"고 탄식했다는 것이다. 대선 결과에 충격받은 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으나, 정치적 반대자를 '괴물'로 지목하고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정조는 교수를 당혹케 했다. 그 교수가 바로 마사 누스바움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그날…
- 「나의 일곱명의 아버지들」
아버지가 일곱 명이라는 것 — 나의 일곱명의 아버지들
일곱 명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아버지가 한 명도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이향인」
고향이라는 유령 — 이향인
"추방당한 자에게 고향은 연인이 아니라 유령이다." 영국의 비평가 마야 자글리(Maya Jaggi)가 《가디언》에서 이 소설을 두고 쓴 말이다. 이사벨라 하마드의 데뷔작 『이향인』은 500쪽이 넘는 분량으로 한 남자의 생애를 더듬지만, 그 남자는 끝내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다. 오스만 제국 말기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의 직물상 아들 미드하트 카말이…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허구의 종(種)이 허구를 논하다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서문에서 하라리는 펜을 멈춘다. 다음 문장을 쓰면 어느 진영의 독자가 등을 돌릴지 계산하는 장면이다. 그는 이스라엘인이고, 동성애자이며, 명상가이다. 그 자기검열의 고백이 한 쪽 반을 채운다. 그러나 막상 본문에 들어서면 평등은 좋다, 민주주의는 지켜야 한다,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진술만 정연히 놓여 있다. 어느 영국 서평가는 이것을 디너파티의 안전한…
- 「비밀의 책」
활자의 냄새, 두려움의 냄새 — 비밀의 책
안나 마촐라는 역사 범죄 소설 장르에서 꾸준히 이름을 쌓아온 작가다. 그녀가 『비밀의 책』을 위해 16세기 베네치아 인쇄 문화와 종교재판소의 작동 방식을 연구한 흔적은 이 소설 곳곳에서 먹과 종이의 냄새로, 세관원의 눈을 피해 금서를 운반하는 긴장으로 되살아난다. 『타임스 문예부록』의 사라 두넌트는 그 결과물을 두고 "진정으로 이질적인 베네치아"라고…
- 「변화하는 세계 질서」
레이 달리오에게 — 변화하는 세계 질서
1982년 당신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멕시코 부채 위기가 미국 은행들을 도미노처럼 쓰러뜨릴 것이라고 예언했을 때, 월가는 당신을 청년 예언자로 대접했다. 그러나 위기는 오지 않았고, 연준은 유동성을 풀었으며, 당신은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아버지에게 4천 달러를 빌려야 했다. 브리지워터의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순간을 당신은 '내 인생 최고의 실패'라고…
- 「자본과 이데올로기」
1,150페이지의 설교 — 자본과 이데올로기
1,150페이지. 책상 위에 놓인 그 벽돌 같은 두께가 먼저 눈을 압도한다.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중세 유럽의 삼기능(三機能) 사회—성직자, 귀족, 노동자—에서 출발하여 19세기 소유권 체제, 20세기 사민주의의 짧은 봄, 그리고 레이건과 대처 이후의 신(新)소유권 질서까지 종횡무진 달린다. 인도 카스트, 브라질 노예제, 남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