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미국이 만든 가난

「미국이 만든 가난」 (Poverty, by America) · 매슈 데스몬드 (Matthew Desmond) · 옮긴이 성원 · 아르테 · 2023

미국이 만든 가난 표지
「미국이 만든 가난」 (2023)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당신은 방관자가 아니다

이 책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려고 쓰였다. 매슈 데스몬드가 2016년 퓰리처상을 안긴 『쫓겨난 사람들』에서 밀워키 최빈곤층 세입자들의 삶을 수년간 밀착 추적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카메라를 돌린다. 렌즈가 향하는 곳은 빈민가가 아니라 교외의 잔디밭이 깔린 단독주택, 529 교육저축계좌를 굴리는 중산층 가정, 아마존 프라임 회원권을 갱신하는 평범한 미국인들이다. 데스몬드의 논제는 단순하다. 미국에 빈곤이 존재하는 이유는 누군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퓰리처상 수상작을 기대하고 펼친 독자라면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에블린도, 크리스털도, 쉐레나도 없다. 밀워키의 골목을 채우던 인물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통계와 논증이 메운다. 장편소설 같던 전작과 달리 이 책은 팸플릿에 가깝다. 짧고, 날카롭고, 선동적이다.


숨겨진 복지국가

데스몬드가 꺼내드는 카드는 ‘숨겨진 복지국가’라는 개념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저소득층 주거보조에 쓰는 예산보다 중산층 이상의 주택담보대출 이자 공제에 투입하는 금액이 더 크다. 근로장려세제(EITC)는 저임금 노동자를 돕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고용주가 임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데스몬드의 주장이다. 부유한 학군의 용도지역제(zoning)는 저소득층 가정이 좋은 학교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이 모든 구조의 수혜자(受惠者)는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믿는 교외 거주 중산층이다.

데스몬드는 이 구조를 ‘기회 독점(opportunity hoarding)‘이라 명명한다. 싸게 먹고, 싸게 입고, 싸게 배송받는 모든 행위가 누군가의 착취를 전제한다는 논리다.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명확하다. ‘빈곤 폐지론자(poverty abolitionist)‘가 되라. 자신의 소비와 투표를 점검하라. 노조를 지지하라. 용도지역제 개혁에 동참하라.


숫자의 전쟁

그러나 이 책의 핵심 전제는 논쟁적이다. 데스몬드는 미국의 빈곤율이 지난 반세기 동안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그 근거는 미국 인구조사국의 공식 빈곤 척도(Official Poverty Measure)다. 문제는 이 척도가 1960년대에 설계된 이후 거의 수정되지 않았으며, 세액공제·식품지원·의료보조 같은 현물 이전소득을 계산에서 제외한다는 점이다.

경제학자 브루스 마이어와 제임스 설리번이 개발한 소비 기반 빈곤 척도나, 인구조사국 자체의 보충적 빈곤 척도(Supplemental Poverty Measure)를 적용하면 풍경이 달라진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미국의 심층 빈곤은 상당히 감소했고, 아동 빈곤은 더 극적으로 줄었다. 2021년 팬데믹 지원금과 확대된 아동세액공제(Child Tax Credit)가 일시적으로 아동 빈곤율을 사상 최저로 끌어내린 사례는 안전망이 ‘작동한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데스몬드의 EITC 비판 역시 과장이라는 반론이 있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EITC의 고용주 전가 효과는 약 3분의 1 수준이며, 나머지 3분의 2는 노동자 몫으로 남는다. ‘제도가 실패했으니 구조 전환만이 답’이라는 결론은 ‘제도를 확대하면 더 나아진다’는 결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매니페스토의 힘은 도덕적 분노에서 나오지만, 사실적 전제가 흔들리면 처방전도 흔들린다.


운동의 빈칸

더 큰 공백은 정치다. 데스몬드는 개인의 도덕적 각성을 호소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정당정치로 번역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에 가깝다. 미국에서 소득이 낮을수록 투표율은 떨어진다. 민주당 연합 안에는 데스몬드가 비판하는 교외 중산층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주택담보대출 이자 공제 폐지나 용도지역제 완화를 당론으로 채택할 정당이 어디 있는가. 데스몬드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진단하면서도 해법은 개인의 양심에 맡긴다. 그 간극은 책의 가장 아픈 지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진 힘은 분명하다. ‘빈곤은 불운’이라는 익숙한 서사를 뒤집어, ‘빈곤은 누군가의 선택’이라는 불쾌한 명제를 들이민다. 편안한 독자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는 일은 학술서의 몫이 아니다. 팸플릿의 몫이다. 데스몬드는 그 역할을 자임했다.


서울의 거울

이 책이 한국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낯설지 않다. 전세 제도, 아파트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논쟁, 강남 8학군을 둘러싼 용도지역제,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보험 적용 논란—모두 ‘누가 구조의 편익(便益)을 가져가는가’라는 물음과 닿아 있다. 한국의 빈곤율 통계 역시 어떤 척도를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설계를 읽어내지 못하면, 정책 논쟁은 공허한 수사로 끝난다.

데스몬드의 책은 완벽한 진단서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방관자일 뿐”이라는 변명을 허용하지 않는 태도만큼은 유효하다. 빈곤이 우연이 아니라 구조라면, 그 구조를 지탱하는 일상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원제 Poverty, by 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