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이
단오 端午
전직 대학 강사
단오의 책장
책장의 가장 앞줄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가 그 시대의 모습이라 믿는다. 오랜 강사 생활을 통해 가다듬은 호흡으로 화제 신간과 시사 도서를 짧게, 단정하게 짚는다.
총 8편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의 무게 [BOOK]
지난주 퇴근길, 지하철에서 옆자리 청년이 이어폰을 낀 채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화면에 비친 건 음원 앱의 브람스 교향곡 3번이었다. 그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의 선율이 귀에 닿지 않아도 머릿속에 흘렀다. 한때 그 곡을 무한 반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제목이 된 그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처음 읽었을 때다.
- 「도둑맞은 집중력」
집중력을 훔친 자가 집중력을 논하다 [BOOK] — 도둑맞은 집중력
2011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기자 요한 하리는 갑작스럽게 퇴장했다. 인용 표절과 위키피디아 익명 계정을 통한 동료 비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웰상을 반납하고 언론계를 떠난 그가 10여 년 만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돌아왔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그의 복귀작 가운데서도 가장 야심 찬 시도다. 현대인의 주의력이 체계적으로 약탈당하고 있다는 진단, 그…
- 「싯다르타」
가르침을 거부한 청년, 102년째 읽히다 — 싯다르타
102년 전 독일에서 출간된 얇은 소설 한 권이 여전히 팔리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1922)다. 영국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는 이 책을 두고 "배경이 어디든,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삶과 죽음의 근본적 물음을 마주하게 하는 명상의 공간"이라 평했다. 고대 인도가 무대고 주인공은 브라만 청년인데, 정작 이 책을 집어 드는 이들…
- 「위버멘쉬」
니체가 종교의 옷을 빌린 이유[BOOK] — 위버멘쉬
이 책은 사기(詐欺)다. 산에서 10년을 숨어 지낸 예언자 차라투스트라가 인류에게 전하는 가르침이라니, 형식부터 성경의 완벽한 표절이다. 시편의 운율, 복음서의 비유 구조, 루터 독일어 성경의 장엄한 호흡까지 빌려 쓰면서 정작 전하는 내용은 신의 죽음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종교적 계시의 형식을 통해 종교적 권위의 종말을 선포한다. 1883년 독일에서…
- 「영화에 관하여」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소유한다는 것이다 [BOOK] — 영화에 관하여
"미국 문학계에서 가장 유럽적인 지식인." 영국 《타임스 문예부록》이 수전 손택에게 붙인 수식이다. 1977년 출간된 『사진에 관하여』를 읽으면 그 표현이 허세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발터 벤야민과 롤랑 바르트를 바탕에 깔고 플라톤의 동굴까지 끌어들이는 이 책은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식론적 차원에서 답을 시도한다. 1973년부터…
-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미국을 흔든 불, 한국어로 도착하다 —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1963년 1월, 『뉴요커』가 이례적인 편집을 감행했다. 한 호의 상당 부분을 단일 에세이에 내주었다. 필자는 서른여덟 살의 흑인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 제목은 「이번에는 불이다(The Fire Next Time)」. 글은 두 편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는 조카에게, 두 번째는 미국 전체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해 말 책으로 묶인 이 에세이는…
- 「감시 자본주의 시대」
이름을 붙이는 일의 무게 — 감시 자본주의 시대
서가에서 눈길을 끄는 책과 오래 남는 책은 다르다. 쇼샤나 주보프의 『감시 자본주의 시대』(문학사상·2021)는 700쪽 분량이 주는 물리적 압박보다 더 무거운 것을 남긴다. 우리가 이미 살고 있는 세계에 이름을 붙여 버렸다는 사실이다.
- 「미국이 만든 가난」
미국이 만든 가난
이 책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려고 쓰였다. 매슈 데스몬드가 2016년 퓰리처상을 안긴 『쫓겨난 사람들』에서 밀워키 최빈곤층 세입자들의 삶을 수년간 밀착 추적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카메라를 돌린다. 렌즈가 향하는 곳은 빈민가가 아니라 교외의 잔디밭이 깔린 단독주택, 529 교육저축계좌를 굴리는 중산층 가정, 아마존 프라임 회원권을 갱신하는 평범한 미국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