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총상과 출구 사이에서 — 총상 입은 밤하늘

「총상 입은 밤하늘」 (Night Sky with Exit Wounds) · 오션 브엉 (Ocean Vuong) · 옮긴이 안톤 허 · 문학과지성사 · 2016

총상 입은 밤하늘 표지
「총상 입은 밤하늘」 (2016)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도청에서 태어나는 시

오션 브엉의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문학과지성사·2022)은 한 소년이 욕실 문 앞에 귀를 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버지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몰래 듣는 아이. 시집의 첫 시 「문턱」이다. 나는 이 첫 페이지를 한참 닫지 못했다. 이 시집이 좋은가 나쁜가를 따지기 전에, 이 시집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봐야 할 것 같았다.

브엉은 베트남계 미국인이고, 게이이며,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 이 정보들은 시집 표지 어디에도 강조되어 있지 않지만, 시를 읽으면 금세 알게 된다. 어떤 비평가들은 이 자전적 정보가 시집을 읽는 열쇠라고 했고, 다른 비평가들은 바로 그 열쇠가 시 자체를 가린다고 반박했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둘 다 덜 중요하다.

신화를 끌어내리다

브엉의 시에서 텔레마코스와 에우리디케가 출몰한다.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이다. 디아스포라 작가가 서양 정전의 신화를 인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흔히 그것은 ‘나도 이 언어의 전통에 속해 있다’는 선언이거나, ‘나는 이 전통의 바깥에 있다’는 거리두기이다. 그런데 브엉은 둘 다 하지 않는다. 그는 오르페우스를 코네티컷의 모텔 방으로, 에우리디케를 어머니의 부엌으로 끌고 온다. 신화는 이제 벽에 걸린 액자가 아니라 바닥에 널브러진 식기가 된다.

한 대목에서 화자는 자신을 에우리디케의 자리에 놓고 이렇게 말한다. “오르페우스가 여자였다면 나는 이 밑바닥에 갇혀 있지 않았을 것.” 정전(正典)의 성별 정치에 대한 야유가 한 문장 안에 들어 있다. 이런 것이 브엉이 신화를 다루는 방식이다. 숭배도 거부도 아닌, 비틀기.

트라우마의 시간

이 시집에서 가장 긴 호흡은 트라우마를 향해 있다. 베트남전의 상처, 난민선의 기억,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침묵. 브엉은 이 주제들 위에서 이미지를 쌓는다. 한 행 안에 ‘우유’와 ‘총탄’이, ‘기타 줄’과 ‘타는 도시’가 나란히 놓인다. 압축이다. 그러나 이 압축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떤 행들은 충격 효과 이상의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고, 어떤 행들은 독자의 정치적 호의에 기대어 빈칸을 메운다. 나는 그 빈칸들을 볼 때마다 망설였다.

그러나 트라우마의 세대 간 전승(轉承)을 다루는 시편들 앞에서는 망설임이 멈췄다. 브엉이 묻는 질문이 있다. 가족 안에서 일어난 폭력과 이주의 상처가 어떻게 다음 세대의 신체에 침전되는가. 그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견딘다. 그 견딤이 시의 형식이 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좋은 시가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됐다. 답을 내리는 시와 답을 견디는 시 중 어느 쪽이 더 정직한가.

훔쳐듣는 자의 자리

다시 처음의 욕실 장면으로 돌아간다. 시는 노래에서 태어난다. 그 노래는 금지된 자리에서 훔쳐듣는 노래다. 이 도청의 윤리가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브엉은 자기 존재의 기원—식민적 폭력, 미군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의 역사—을 회피하지 않는다. “미군 병사가 베트남 농가의 소녀를 강간했다. 그렇게 나의 어머니가 존재한다.” 이런 문장을 두고 충격 미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이것을 윤리적 결단이라고 부르고 싶다. 자기 존재의 어두운 뿌리를 직시하려는 결단.

나는 이 시집을 덮으면서 묻고 싶어졌다. 우리는 각자의 ‘총상’을 얼마나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총상에서 ‘출구’로 가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어디서 시작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