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이
퐁파도르 Pompadour
작가
퐁파도르의 시집
시인과 시집의 옆에서, 시인의 호흡을 따라 산문을 쓴다. 진은영과 최승자를 자주 들춰본다. 분석은 차갑지 않고, 서정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총 11편
- 「체호프 단편선」
체호프는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 체호프 단편선
체호프의 단편은 실패한 소설이다. 플롯이 없다. 반전이 없다. 결말도 없다. 「개를 데리고 있는 부인」에서 불륜은 시작되지만 끝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사랑인지 권태인지 분간 못 한 채 이야기 밖으로 사라진다. 독자는 남겨진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 「가라오케 가자!」
목소리가 떨릴 때 — 가라오케 가자!
무대 위에서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떤 종류의 공포인가. 판단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자신의 한계가 드러날 것에 대한 공포인가. 와야마 야마의 『가라오케 가자!』는 그 질문을 가장 황당한 설정 속에서 던진다. 야쿠자 조직원 나리타가 합창부 부장 사토미를 노래방으로 납치한다. 범죄의 서막인가. 아니다. 보컬 레슨 요청이다. 나리타는 조직 내…
- 「1938 타이완 여행기」
통역할 수 없는 것들 — 1938 타이완 여행기
여행기란 무엇인가. 낯선 곳을 다녀왔다는 증명이 아니다. 오히려 보는 자의 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구조의 폭로다. 1938년, 일본인 여행작가 아오야마 치즈코가 타이완에 온다. 섬의 음식을 기록하라는 제국의 위촉을 받고서. 그녀 옆에는 통역 왕첸허가 있다. 현지인. 대만어, 일본어, 객가어를 넘나드는 여자. 둘이 함께 걷고 먹고 말한다. 영국…
- 「사물들」
가정법으로 쓰인 삶: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그들은 주로 가정법 안에서 존재한다." 존 업다이크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두고 남긴 평이다. 1965년 파리, 젊은 부부 제롬과 실비는 원하고, 상상하고, 갈망한다. 그러나 소유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소유하는 순간 이미 그 물건은 원했던 것이 아니게 된다. 페렉은 소설 전체를 조건법과 미완료 시제로 적는다. "그들은 좋아했을 것이다",…
- 「자기 앞의 생」
거짓말쟁이의 유산 — 자기 앞의 생
1975년 공쿠르상 수상작 발표일, 프랑스 문단은 신인 '에밀 아자르'의 등장에 열광했다. 《뉴욕 타임스》의 아나톨 브로야드는 이 소설을 두고 "소설의 가능성을 재발명하는 것 같은 목소리"라고 썼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이미 1956년 같은 상을 받은 로맹 가리라는 것을. 한 사람이 공쿠르상을 두 번 받는 일은 규정상 불가능하다.…
- 「코스모스」
『코스모스』는 과학책이 아니다
더 정확히, 과학책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1980년에 출간된 이 책의 데이터는 이미 오래전에 갱신되었다.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를 잃었고, 화성에서 물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여전히 읽힌다. 남은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다. 칼 세이건은 시인의 경탄(驚歎)으로 우주를 응시했고, 그 시선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 「바다에서 온 소년」
바다가 보내온 것 — 바다에서 온 소년
열두 살 무렵, 제주 바닷가에서 밤새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 해변을 걸었다. 파도가 밀어올린 것들 사이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플라스틱 인형이었는데, 머리카락 반쪽이 녹아 있었고 한쪽 눈이 없었다. 어디서 온 것인지, 누구의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다시 모래 위에 내려놓았다. 바다가 보내온 것은 바다에 두고…
- 「충분하다」
마침표가 건네는 초대장 — 충분하다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 한 장. 산맥의 곡선, 강의 흐름, 평야의 초록이 있다. 그러나 집단 묘지는 없다. 폐허도 없다. 지도란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사물이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마지막 시집 「충분하다」를 펼치면, 한 노시인이 그 거짓말 앞에 서 있다. 비난하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등고선을 따라가며 무언가를 기억하려 한다. 지도의 침묵 속에서 지워진…
- 「인 메모리엄」
기억하는 자가 사랑한다 — 인 메모리엄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처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읽었다. 진흙과 시체 냄새가 페이지 사이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 뒤로 1차 세계대전 문학은 나에게 일종의 성역이 되었다. 오언, 사순, 팻 바커까지. 이미 충분히 탐사된 영토, 더는 새로운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이는 참호. 그래서 앨리스 윈의 데뷔 장편 『인…
- 「총상 입은 밤하늘」
총상과 출구 사이에서 — 총상 입은 밤하늘
오션 브엉의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문학과지성사·2022)은 한 소년이 욕실 문 앞에 귀를 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버지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몰래 듣는 아이. 시집의 첫 시 「문턱」이다. 나는 이 첫 페이지를 한참 닫지 못했다. 이 시집이 좋은가 나쁜가를 따지기 전에, 이 시집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봐야 할 것 같았다.
- 「야생 붓꽃」
정원에서 협상하는 자의 기도 — 야생 붓꽃
좋은 시란 무엇인가. 질문을 이렇게 시작하면 답은 언제나 너무 많다. 시인마다 다르고, 한 시인 안에서도 시기마다 다르다. 그러니 질문을 바꾸자. 신을 믿지 않는 시대에, 신에게 말을 거는 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루이즈 글릭의 『야생 붓꽃』(1992)은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퓰리처상을 받았고, 삼십 년이 지났고, 글릭은 3년 전 죽었다. 그런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