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이
퐁파도르 Pompadour
작가
퐁파도르의 시집
시인과 시집의 옆에서, 시인의 호흡을 따라 산문을 쓴다. 진은영과 최승자를 자주 들춰본다. 분석은 차갑지 않고, 서정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총 8편
- 「사물들」
가정법으로 쓰인 삶: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그들은 주로 가정법 안에서 존재한다." 존 업다이크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두고 남긴 평이다. 1965년 파리, 젊은 부부 제롬과 실비는 원하고, 상상하고, 갈망한다. 그러나 소유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소유하는 순간 이미 그 물건은 원했던 것이 아니게 된다. 페렉은 소설 전체를 조건법과 미완료 시제로 적는다. "그들은 좋아했을 것이다",…
- 「자기 앞의 생」
거짓말쟁이의 유산 — 자기 앞의 생
1975년 공쿠르상 수상작 발표일, 프랑스 문단은 신인 '에밀 아자르'의 등장에 열광했다. 《뉴욕 타임스》의 아나톨 브로야드는 이 소설을 두고 "소설의 가능성을 재발명하는 것 같은 목소리"라고 썼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이미 1956년 같은 상을 받은 로맹 가리라는 것을. 한 사람이 공쿠르상을 두 번 받는 일은 규정상 불가능하다.…
- 「코스모스」
『코스모스』는 과학책이 아니다
더 정확히, 과학책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1980년에 출간된 이 책의 데이터는 이미 오래전에 갱신되었다.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를 잃었고, 화성에서 물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여전히 읽힌다. 남은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다. 칼 세이건은 시인의 경탄(驚歎)으로 우주를 응시했고, 그 시선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 「바다에서 온 소년」
바다가 보내온 것 — 바다에서 온 소년
열두 살 무렵, 제주 바닷가에서 밤새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 해변을 걸었다. 파도가 밀어올린 것들 사이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플라스틱 인형이었는데, 머리카락 반쪽이 녹아 있었고 한쪽 눈이 없었다. 어디서 온 것인지, 누구의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다시 모래 위에 내려놓았다. 바다가 보내온 것은 바다에 두고…
- 「충분하다」
마침표가 건네는 초대장 — 충분하다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 한 장. 산맥의 곡선, 강의 흐름, 평야의 초록이 있다. 그러나 집단 묘지는 없다. 폐허도 없다. 지도란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사물이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마지막 시집 「충분하다」를 펼치면, 한 노시인이 그 거짓말 앞에 서 있다. 비난하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등고선을 따라가며 무언가를 기억하려 한다. 지도의 침묵 속에서 지워진…
- 「인 메모리엄」
기억하는 자가 사랑한다 — 인 메모리엄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처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읽었다. 진흙과 시체 냄새가 페이지 사이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 뒤로 1차 세계대전 문학은 나에게 일종의 성역이 되었다. 오언, 사순, 팻 바커까지. 이미 충분히 탐사된 영토, 더는 새로운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이는 참호. 그래서 앨리스 윈의 데뷔 장편 『인…
- 「총상 입은 밤하늘」
총상과 출구 사이에서 — 총상 입은 밤하늘
오션 브엉의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문학과지성사·2022)은 한 소년이 욕실 문 앞에 귀를 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버지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몰래 듣는 아이. 시집의 첫 시 「문턱」이다. 나는 이 첫 페이지를 한참 닫지 못했다. 이 시집이 좋은가 나쁜가를 따지기 전에, 이 시집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봐야 할 것 같았다.
- 「야생 붓꽃」
정원에서 협상하는 자의 기도 — 야생 붓꽃
좋은 시란 무엇인가. 질문을 이렇게 시작하면 답은 언제나 너무 많다. 시인마다 다르고, 한 시인 안에서도 시기마다 다르다. 그러니 질문을 바꾸자. 신을 믿지 않는 시대에, 신에게 말을 거는 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루이즈 글릭의 『야생 붓꽃』(1992)은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퓰리처상을 받았고, 삼십 년이 지났고, 글릭은 3년 전 죽었다. 그런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