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레이 달리오에게 — 변화하는 세계 질서
「변화하는 세계 질서」 (Principles for Dealing with the Changing World Order: Why Nations Succeed and Fail) · 레이 달리오 (Ray Dalio) · 옮긴이 송이루·조용빈 · 한빛비즈 · 2021
달리오 선생,
1982년 당신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멕시코 부채 위기가 미국 은행들을 도미노처럼 쓰러뜨릴 것이라고 예언했을 때, 월가는 당신을 청년 예언자로 대접했다. 그러나 위기는 오지 않았고, 연준은 유동성을 풀었으며, 당신은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아버지에게 4천 달러를 빌려야 했다. 브리지워터의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순간을 당신은 ‘내 인생 최고의 실패’라고 부른다. 예측의 실패가 오히려 예측 모델의 정교화를 낳았다는 고백이다. 나는 이번 책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읽으며 그 40년 전의 굴욕이 자꾸 떠올랐다. 당신은 여전히 예언자이고, 이 책은 여전히 예언서인데, 문제는 예언의 시간표가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데 있다.
500쪽에 걸쳐 당신이 펼쳐 놓은 빅 사이클의 논지는 간명하다. 제국은 흥하고 쇠하며, 그 주기는 대략 100년 전후이고, 미국은 지금 그 곡선의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 16세기 스페인, 17세기 네덜란드, 19세기 대영제국, 그리고 중화의 명·청 왕조를 같은 분석 틀에 욱여넣고, 교육·혁신·군사력·기축통화 지위라는 8개 지표로 흥망(興亡)의 궤적을 그리는 시도 자체는 경탄할 만하다. 그러나 그 궤적이 어떤 속도로 굴러가는지, 우리가 지금 2분 전인지 20년 전인지를 당신의 모델은 끝내 말해 주지 않는다. 스페인의 쇠퇴는 한 세기가 걸렸고, 러시아 차르 체제는 불과 몇 해 만에 무너졌다. 이 둘을 같은 ‘사이클’이라 부를 수 있다면, 사이클이라는 말은 거의 무의미해진다.
책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챕터에서 나는 또 다른 불편함을 느꼈다. 당신은 시진핑 체제의 지도자들이 칸트를 읽고 철학적 깊이가 있다고 적으면서, 신장 위구르나 홍콩의 인권 문제는 ‘중국의 주권 사안’이라며 슬쩍 비켜 간다. 서구의 약점은 미시까지 들여다보고, 중국의 약점은 거시로만 다룬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대일로의 부채 함정이 채권국 자신의 대차대조표로 되돌아오는 구조, 한 세대 안에 일본을 넘어설 고령화 곡선, 사기업 위축이 장기 혁신에 미치는 마찰―이 변수들이 당신의 그래프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브리지워터가 중국 금융시장에 깊숙이 발을 들인 자산운용사라는 사실이 분석의 어휘를 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당신의 열정 자체를 폄훼하고 싶지 않다. 헤지펀드 매니저가 역사철학자로 자기를 정체화하려는 욕망은 차라리 부러운 것이고, 데이터 시각화에 들인 노력은 전통적인 사이클 이론들이 빠지기 쉬운 단순화의 함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기축통화 전환을 일직선이 아니라 출렁이는 곡선으로 묘사한 부분, 부채 사이클과 내부 갈등 사이클, 외부 강대국 갈등 사이클이 어떻게 동시에 정점을 향해 수렴(收斂)하는지를 보여 주는 챕터들은 이 책의 가장 강력한 페이지다.
그러나 당신의 결론―‘제국은 영원하지 않다’, ‘부채가 너무 많이 쌓이면 위기가 온다’―은 거시경제 입문서가 첫 챕터에서 다루는 명제와 다르지 않다. 누구나 동의할 만한 상투구에 500쪽의 그래프를 덧입히면 ‘원칙’이 되는가. 미국 시민과 정치인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이클 후반부에 와 있다’는 서사를 내면화하면, 정작 제도 개혁과 동맹 강화, 재정 규율을 통한 사이클 변형의 의지는 약해진다. 예측의 언어가 체념의 언어로 전이되는 순간이다.
나는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신의 예측 모델이 가장 설득력을 얻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그 예측이 틀릴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할 때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1982년의 실패가 40년 후의 『원칙』을 낳았듯,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결국 독자들이 당신의 사이클을 의심하고 뒤집으려 시도하는 데서 피어날 것이다. 예언자의 직업적 비극은 예언이 적중하면 세상이 망하고, 예언이 빗나가면 자신이 망한다는 데 있다. 당신이 맞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당신의 열렬한 독자이면서 동시에 당신의 가장 뻔뻔한 반론자다.
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