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4세기의 인내, 혹은 인류에 대한 판결문 — 삼체

「삼체」 (The Three-Body Problem (三体)) · 류츠신 (Liu Cixin / 刘慈欣) · 옮긴이 이수경 (한국어판), Ken Liu (영역본) · 단숨 · 2008

삼체 표지
「삼체」 (2008)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웰스의 함대가 떠난 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의 톰 시피는 류츠신의 『삼체』를 두고 “21세기판 『우주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다. 정확한 비유다. H. G. 웰스 이래 영미권 외계인 침공 서사는 함대가 하늘을 덮고 도시가 불타는 즉발성에 기대왔다. 『삼체』는 그 시간 감각을 통째로 뒤집는다. 침공의 카운트다운이 4세기 뒤로 설정된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결코 함대를 보지 못한다. 이 단순한 전제 하나가 작품 전체의 결(texture)을 바꾼다.

이 ‘장기적 시선’은 단순히 작가의 발상이 기발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양식과 정치적 결단의 질을 결정한다. 당장 내일 침공당하는 세계와 400년 뒤에 침공당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전자의 세계에서 인류는 본능적 공포와 영웅 서사로 대응하지만, 후자의 세계에서 인류는 무력한 계획과 세대를 넘는 배반의 가능성 사이에서 표류한다.

1967년의 교정에서

작품의 도덕적 출발점은 1967년 칭화대 교정의 비판투쟁회다. 천체물리학자 예원제의 아버지가 군중 앞에서 살해당한다. 딸은 그것을 본다. 이 장면을 문화대혁명의 폭력을 고발하는 장면으로만 읽는 것은 절반만 읽는 것이다. 류츠신이 이 장면에 부여한 무게는 더 크다. 한 개인이 종(種) 전체에 대한 신뢰를 거두는 순간, 그 결단이 어떤 우주적 결과를 낳는가를 묻는 사고실험의 출발점이다.

예원제의 행위는 개인의 복수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 전체에 대한 판결이다. 그녀는 홍안기지의 거대한 안테나로 우주를 향해 신호를 보낸다. 그녀가 부른 것은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다. 그녀의 결단이 담고 있는 윤리적 물음은 단순하다. 인류가 저질러온 폭력의 총량(總量)이 인류가 존속할 자격 자체를 부정할 정도에 이르렀는가. 이 물음에 그녀는 ‘그렇다’고 답한다.

과학자들의 자살

작품 현대 파트에서 과학자들이 연쇄 자살한다. 나노기술 연구자 왕먀오는 이 미스터리를 쫓다가 ‘삼체’라는 이름의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한다. 게임 안에서 그는 세 개의 항성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카오스적으로 운동하는 행성의 역사를 체험한다. 묵자, 진시황, 뉴턴, 폰 노이만이 시대를 초월해 같은 무대에 등장하고, 30만 명의 병사를 인간 컴퓨터로 조직해 행성의 운명을 계산하려 한다.

이 장면은 인류 지성사의 다양한 모델이 카오스적 자연 앞에서 동등하게 무력해지는 순간이다. 작가는 단순히 천체역학의 난제를 장식물로 가져오지 않았다. 세 개의 태양에 시달리는 문명이 수백 번 흥망을 반복하는 그 무대는, 예측 가능한 질서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 끝내 무너지는 현장이다.

과학자들의 자살은 이 맥락에서 설명된다. 그들은 양성자 하나를 초고차원 슈퍼컴퓨터로 변환한 ‘지자’(智子)에게 감시당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물리학의 기초 실험 결과가 조작당하고, 과학의 진리 추구 자체가 봉쇄된다. 어떤 이들은 “물리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앞에서 무너진다. 이 전개에는 의문이 따른다. 아서 클라크의 명제—‘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를 떠올리면, 단 한 번의 기현상에 과학자들이 너무 빠르게 절망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류츠신이 그리려 한 것은 과학자의 심리적 취약성이 아니라, 문명이 다른 문명에게 종속될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물의 평면성, 혹은 의도된 흐릿함

『삼체』의 인물들은 평면적이다. 왕먀오는 플롯이 그를 필요로 할 때만 존재한다. 그의 아내와 동료들은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그가 자살한 과학자 양둥에게 품는 감정은 1년 전 그녀를 단 몇 초 본 것에 기댄 관념적 집착에 불과하다. 양둥은 마치 잊혀버린 듯 사라진다.

그러나 이 평면성은 다른 관점에서도 읽힌다. 작품의 거대한 시간 감각 속에서 개인은 의도적으로 흐릿해지고, 종(種)으로서의 인류와 외계 문명이라는 두 거대한 주체가 무대 위로 떠오른다. 등장인물이 거의 모두 일류 과학자이거나 권력자이며 평범한 시민의 삶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단순한 결함이라기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축소로 보아야 한다.

권력의 집중과 생존의 논리

류츠신은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에 대해 의외로 동조적인 입장을 보인다. 작품 속 ‘면벽자’ 설정—인류를 구하기 위해 절대 권력을 부여받은 소수—은 이 정치적 감각의 문학적 구현이다. 이 양면성은 비난의 대상이라기보다, 작품이 다루는 윤리적 문제가 결코 단순한 답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증거에 가깝다.

여기서 작품은 21세기의 난제들과 겹친다. 기후 위기 앞에서 국가들은 합의에 실패한다. 장기적 위협 앞에서 민주주의의 느린 의사결정은 무력하다는 회의(懷疑)가 퍼진다. 기후 위기, 자연 파괴, 국가 간 합의의 실패라는 21세기 인류의 난제가 SF적 외피 아래에서 끊임없이 진동한다.

류츠신의 작품이 불편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위기 앞에서 권력 집중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작품 안에 숨기지 않는다. 마오 시기의 폭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적이지만, 생존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유예하는 발상에 대해서는 의외로 관대하다. 이 양가성(兩價性)이 작품을 단순한 SF 오락물에서 구별한다.

세계문학의 자격

『삼체』는 세계문학으로 읽힐 자격을 갖춘 중국 SF다. 스타니스와프 렘과 이탈로 칼비노의 계보, 아서 클라크나 래리 니븐의 최상급 작품 옆에 놓을 만한 야심이다. 켄 류의 영역본에 삽입된 옮긴이 각주들은 영미 SF 전통에 익숙한 독자가 작품을 자신의 좌표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충동을 적절히 제어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결국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인류는 우주 안에서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가. 예원제는 ‘없다’고 답했다. 그녀의 판결이 정당한지 여부는 독자에게 남겨진다. 400년의 유예 기간 동안 인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 질문이 2, 3부에 이어진다.

일본 비평가 와카시마 다다시는 후속작을 곧장 읽기보다 1부의 결말에서 다가오는 지구의 종말을 마치 중국 고전을 읽듯 천천히 음미하라고 권한다. 나는 그의 권유를 따를 인내심이 없었다. 첫 권을 덮자마자 다음 권으로 손이 갔다. 비평가로서의 냉정한 거리 따위는 이미 무너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