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이
에크리 Écrits
다독가 · 출판 칼럼니스트
에크리의 책에서 책으로
책 한 권을 읽으면 그 책이 가리키는 다른 책으로 건너가는 사람.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길을 산문으로 그린다. 인용은 정확히, 해석은 군더더기 없이.
총 16편
-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고통과 괴로움 사이, 정신과 의사가 걸어간 명상의 길 —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불안장애 인구가 3억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이후 25%가 급증한 수치다. 명상 앱 시장은 같은 기간 연평균 14% 성장률을 기록했다.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평화를 찾는 콘텐츠를 소비한다. 그런데 소비한다고 평화가 오는가.
-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새의 문법을 해독한 사나이 —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스즈키 도시타카는 나가노현 산림에서 20년을 보냈다. 새벽 4시, 아직 어두운 숲에 도착해 박새의 울음을 녹음한다. 수천 개의 음성 파일을 분석하고, 실패한 가설을 폐기하고 또 폐기한다. 교토대학의 이 행동생태학자는 동료들의 회의 속에서도 하나의 물음을 놓지 않았다. 새의 지저귐은 본능적 신호에 그치는가, 아니면 문법(文法)을 가진 언어인가. 책…
- 「안녕 신」
범인을 먼저 알려주는 추리소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 안녕 신
초등학교 시절, 동네 헌책방에서 추리소설을 사면 마지막 장부터 펼치는 버릇이 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먼저 확인한 뒤 처음부터 읽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결말을 모르는 채 300쪽을 헤매는 건 참을 수 없는 불안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범인을 알고 읽으니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작가가 어디서 복선을 깔았는지, 탐정의 추리가 어디서…
- 「연인」
폐허가 된 얼굴이 말하는 것 — 연인
지난주 서랍을 정리하다 스무 살 적 사진을 발견했다. 얼굴이 낯설었다. 저 사람이 나였던가. 피부의 탄력, 눈빛의 선명함, 아직 아무것도 겪지 않은 자의 무지한 자신감. 사진을 내려놓으며 거울을 보았다. 주름이 새겨진 현재의 얼굴 위로 과거의 얼굴이 겹쳤다가 사라졌다. 기묘한 건 그 순간 느낀 감정이 상실감이 아니라 일종의 안도였다는 점이다. 젊은…
- 「그녀를 지키다」
돌 속에서 그녀를 꺼내는 데 60년이 걸렸다 — 그녀를 지키다
이탈리아 어느 수도원. 노인이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킨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조각상, 전설처럼 떠도는 걸작. 그는 수사(修士)가 아니다. 신을 믿지도 않는다. 다만 돌을 믿는다. 그리고 돌 안에 새긴 한 여자를 믿는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소설 '그녀를 지키다'는 이 늙은 조각가 미모의 회상으로 시작해 과거로 나선형을 그린다. 회상의 끝에서 독자는…
- 「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죽은 자들 곁에서 산 자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 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발레리 페랭의 소설 『일요일에 잊힌 사람들』은 과잉이다. 죽은 아이, 배신한 배우자, 폐허가 된 삶,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낯선 이의 유골함까지. 500쪽이 넘는 지면에 비극이 겹겹이 쌓인다. 제임스 우드는 《뉴요커》에서 이 소설의 고통이 "오페라적 강도"로 축적된다고 썼다.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과잉은 소설을 망치지 않는다.
- 「아르테미스」
달에 리벳을 박은 남자, 인간은 아직 — 아르테미스
드와이트 가너는 《뉴욕타임스》 서평에서 앤디 위어를 이렇게 정리했다. "문제를 엔지니어링하는 재능은 완벽히 전시돼 있다. 인간을 엔지니어링하는 역량은 아직 다듬어져야 한다." 혹평이라기보다는 정확한 진단에 가깝다. 위어의 두 번째 장편 '아르테미스'를 읽으면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결함 있는 피아노가 명연을 낳았다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1975년 쾰른.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릿은 공연장에 도착해 피아노 상태를 확인하고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건반은 뻣뻣했고 고음부는 소리가 죽어 있었다. 주최 측이 약속한 베젠도르퍼 대신 놓인 것은 연습용 소형 악기였다. 열일곱 살 공연 기획자가 빗속에서 재릿을 쫓아가 간청했고, 결국 그는 무대에 올랐다. 그날 밤 녹음된 앨범 'The…
- 「오후의 마지막 잔디」
잔디를 깎는 일 — 오후의 마지막 잔디
젊은 남자가 잔디 깎기 기계를 민다. 부유한 저택 정원, 8월 오후. 기계 진동이 팔뚝을 타고 어깨로 번지고, 베어진 풀 냄새가 공기에 머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한 줄을 깎고, 돌아서서, 다음 줄. 오후가 영원처럼 늘어진다.
- 「삼체」
4세기의 인내, 혹은 인류에 대한 판결문 — 삼체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의 톰 시피는 류츠신의 『삼체』를 두고 "21세기판 『우주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다. 정확한 비유다. H. G. 웰스 이래 영미권 외계인 침공 서사는 함대가 하늘을 덮고 도시가 불타는 즉발성에 기대왔다. 『삼체』는 그 시간 감각을 통째로 뒤집는다. 침공의 카운트다운이 4세기 뒤로 설정된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살아…
- 「태풍의 계절」
진흙 사태처럼 흘러내리는 문장, 그 아래 묻힌 것 — 태풍의 계절
"여성을 살해한 남자는 병든 인간이 아니라 가부장제가 정상적으로 빚어낸 산물이다." 멕시코시티 거리 시위에서 등장했던 이 문장을, 페르난다 멜초르의 소설 『태풍의 계절』을 읽은 뒤 다시 떠올린다.
- 「부의 사다리에 올라타라」
데이터가 말하는 투자, 혹은 '그냥 사라'는 한 문장의 무게 — 부의 사다리에 올라타라
재테크 서적의 서가 앞에 서면 묘한 피로감이 든다. '부자 되는 습관',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의 비밀'—제목만으로도 숨이 찬다. 과연 이 책들은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을 증명하는가.
- 「내가 있는 곳」
선택한 언어로 사라지기 — 내가 있는 곳
퓰리처상 수상 작가 줌파 라히리가 영어를 버렸을 때, 뉴욕타임스는 이를 "문학적 자살"에 비유했다. 2015년 로마로 이주한 그녀는 모국어인 영어와 부모의 언어인 벵골어를 모두 내려놓고 이탈리아어로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이탈리아어 에세이집 '다른 말로'가 나왔을 때 영미 비평계는 당혹했다. 왜 가장 잘 쓰는 언어를 포기하는가.
- 「방랑자들」
정착을 거부한 자들의 별자리 — 방랑자들
인물이 살아 움직이고, 사건이 원인과 결과로 매끈하게 연결되며,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서사의 원환(圓環)이 완성되는 책.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은 그런 통념에 대한 가장 도발적인 반박이다.
- 「리틀 라이프」
돋보기 아래의 개미들 — 리틀 라이프
"야나기하라는 높은 곳 어딘가에서 돋보기를 들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년들을 개미처럼 태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비평가 안드레아 롱 추가 『리틀 라이프』를 두고 쓴 문장이다. 퓰리처상 비평 부문을 안긴 바로 그 문장.
- 「인터메초」
샐리 루니에게 — 인터메초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매번 머뭇거린다. 아마도 '좋은'이라는 형용사가 문제일 것이다. 좋다는 것은 완성도를 뜻하는가, 야심을 뜻하는가. 익숙한 쾌락을 주는 소설이 좋은가,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설이 좋은가. 당신의 네 번째 장편 '인터메초'를 읽으며 나는 이 오래된 물음 앞에 다시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