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잔디를 깎는 일 — 오후의 마지막 잔디

「오후의 마지막 잔디」 (午後の最後の芝生 (Gogo no Saigo no Shibafu / The Last Lawn of the Afternoon)) ·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Haruki Murakami) / 안자이 미즈마루 (安西水丸, Anzai Mizumaru) · 옮긴이 양윤옥 · 문학사상 · 1990

오후의 마지막 잔디 표지
「오후의 마지막 잔디」 (1990)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젊은 남자가 잔디 깎기 기계를 민다. 부유한 저택 정원, 8월 오후. 기계 진동이 팔뚝을 타고 어깨로 번지고, 베어진 풀 냄새가 공기에 머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한 줄을 깎고, 돌아서서, 다음 줄. 오후가 영원처럼 늘어진다.

퇴적물처럼 쌓이는 문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오후의 마지막 잔디’는 그런 오후들의 기록이에요.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는 그의 문장이 “퇴적물처럼 쌓여 감정의 무게를 거의 눈치채지 못하게 쌓아 올린다”고 썼는데, 정확한 진단이에요. 짧은 선언문 같은 문장, 구체적 명사, 은유를 향한 완강한 거부.

이 책의 화자들은 수동적이에요. 자기 삶을 관찰자처럼 바라보죠. 그 거리감이 답답할 수 있지만, 현대적 고립의 정밀한 초상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고독 안에서 이상하게도 평온해 보여요.

미완의 밑그림

이 단편들은 무라카미 문학의 습작이에요. 완결된 서사보다 스케치에 가깝죠. 그러나 《가디언》의 지적처럼, 장편이 때로 희생하는 “시선의 순수함”이 여기엔 남아 있어요. 평범한 오후를 작은 영원으로 바꾸는, 익숙함 속에서 낯섦을 발견하는 눈.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는 텍스트를 설명하지 않고 대화해요. 어쩌면 저도 비평이란 잔디를 깎고 있는지 몰라요—한 줄 쓰고, 돌아서서, 다음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