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기억하는 자가 사랑한다 — 인 메모리엄

「인 메모리엄」 (In Memoriam) · 앨리스 윈 / Alice Winn · 옮긴이 이나경 · 문학동네 · 2023

인 메모리엄 표지
「인 메모리엄」 (2023)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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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처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읽었다. 진흙과 시체 냄새가 페이지 사이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 뒤로 1차 세계대전 문학은 나에게 일종의 성역이 되었다. 오언, 사순, 팻 바커까지. 이미 충분히 탐사된 영토, 더는 새로운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이는 참호. 그래서 앨리스 윈의 데뷔 장편 『인 메모리엄』을 펼칠 때 나는 경계했다. 《가디언》의 알렉스 프레스턴은 이 선택을 ‘무모하다(reckless)‘고 표현했다. 사순과 오언이 이미 그려놓은 지형 위에 또 무엇을 쌓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 소설은 몇 페이지 만에 그 무모함을 정당화한다. 거기엔 그들이 들어가지 못한 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2

게이원과 엘우드. 영국 기숙학교 프레슈트에서 만난 두 소년은 서로를 향한 감정을 이름 붙이지 못한 채 크리켓 경기와 라틴어 수업 사이를 오간다. 게이원은 내성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며, 엘우드는 금빛 머리칼과 사교적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것을 우리는 알아보지만, 그들 자신은 모른 척한다. 아니, 모르는 척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1914년, 전쟁이 선포되자 학교는 텅 비어간다. 소년들은 앞다투어 입대하고, 학교 신문의 추모란은 이름들로 채워진다.

윈은 이 추모란을 소설의 구조적 장치로 사용한다. 장마다 삽입되는 짧은 부고(訃告).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기록하는 건조한 문장들. 처음엔 배경처럼 스쳐가던 이름들이 쌓이고 쌓여 그리스 비극의 합창단처럼 중심 서사를 둘러싼다. 윈의 장치는 자칫 기교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지만, 그 위험을 돌파한다. 왜냐하면 이 이름들은 기록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각의 이름 뒤에는 누군가의 사랑과 고통과 삶을 향한 권리가 있었다.

3

참호에서 게이원과 엘우드의 관계는 변한다. 억압과 은폐의 공간이었던 학교와 달리, 전장은 역설적으로 해방의 계기가 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욕망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이 된다. 윈은 성애 장면을 전투 장면과 동일한 솔직함으로 쓴다. 둘 다 자아의 포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 나는 여기서 내 한계를 인정해야겠다. 이 소설이 퀴어 서사로서 갖는 의미를 충분히 말할 자격이 내겐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이 동성애를 시대적 억압의 상징이나 은유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사랑은 살아 있는 현실이다. 기쁨과 죄책감과 공포가 뒤섞인, 호흡하는 현실.

《뉴욕 타임스》의 케이티 키타무라는 이 소설이 “기억 자체에 관한 소설”이라고 썼다. 우리는 죽은 자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사랑은 상실 너머로 어떻게 지속되는가. 역사는 퀴어의 삶을 보존하는가, 지우는가. 윈의 대답은 단순하지 않다. 추모란에 실린 이름들은 보존의 형식이지만, 그 이름들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는 공적 기록에서 배제된다. 게이원과 엘우드의 사랑은 어떤 추모란에도 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사실이 이 소설을 쓰게 만든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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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문학의 전통 안에 퀴어 서사를 위치시키는 일은 단순한 덧붙임이 아니다. 그것은 그 전통 자체를 다시 읽게 만든다. 제국과 가부장제와 이성애 규범이 한 세대를 도살장(屠殺場)으로 몰아넣었다면, 그 체제에 균열을 내는 사랑은 저항의 형식이 된다. 윈은 이 정치적 함의를 로맨스의 뒤편에 숨기지 않는다. 전면에 드러내면서도 선언적이지 않다. 그것이 이 데뷔작의 놀라운 점이다. 서정과 비판이 분리되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부가 다소 급하게 진행된다는 지적이 있고, 일부 조연 인물들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의 결함보다 성취를 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기억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말하는 바가 그것이다. ‘기억하며(In Memoriam)‘라는 제목은 애도의 형식이지만, 애도는 곧 사랑의 증거다. 게이원과 엘우드는 서로를 기억함으로써 사랑했고, 윈은 그들을 기억함으로써 이 소설을 썼다. 참호의 진흙 속에서 피어난 사랑은 실패한 것인가, 성공한 것인가. 둘 다였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