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결함 있는 피아노가 명연을 낳았다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Messy: The Power of Disorder to Transform Our Lives) · 팀 하포드 (Tim Harford) · 옮긴이 윤영삼 · 위즈덤하우스 · 2016
1975년 쾰른.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릿은 공연장에 도착해 피아노 상태를 확인하고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건반은 뻣뻣했고 고음부는 소리가 죽어 있었다. 주최 측이 약속한 베젠도르퍼 대신 놓인 것은 연습용 소형 악기였다. 열일곱 살 공연 기획자가 빗속에서 재릿을 쫓아가 간청했고, 결국 그는 무대에 올랐다. 그날 밤 녹음된 앨범 ‘The Köln Concert’는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솔로 피아노 음반이 됐다.
팀 하포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서두에서 이 일화를 배치한다. 이상적 조건의 부재(不在)가 오히려 예술가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는 역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논지가 여기 압축돼 있다.
정돈(整頓)의 신화를 의심하라
저자는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출신의 경제 저술가다. 그가 이 책에서 조준하는 표적은 ‘더 정리하면 더 나아진다’는 믿음이다. 마리 곤도의 정리 철학이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에 하포드는 정반대 질문을 던진다. 어수선함은 정말로 적(敵)인가.
브라이언 이노는 녹음 현장에 무작위 지시 카드를 배치해 뮤지션들의 습관을 교란했다. 마틴 루서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준비된 원고에 없던 즉흥 구절이었다. 에르빈 롬멜의 북아프리카 전역 성공은 작전 계획서가 아니라 현장의 즉흥적 판단에서 비롯됐다. 하포드가 열거하는 사례는 일관된 패턴을 드러낸다. 통제를 내려놓는 순간 창조성이 발현된다.
알고리즘이 잠식(蠶食)하는 인지
《뉴욕타임스 북리뷰》의 폴 블룸은 이 책이 “최적화 숭배에 억눌린 독자에게 지적 탄약을 제공한다”고 평했다. 이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하포드는 GPS 내비게이션과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이 인간의 공간 인지와 우연적 발견 능력을 위축시킨다고 경고한다.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는 길을 잃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다.
아마존 물류창고는 일부러 무질서한 적재 방식을 채택했다. 비슷한 물건을 나란히 두면 피킹 오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동질적 팀보다 마찰 많은 이질적 팀이 더 나은 성과를 낸다는 조직심리학 연구도 소개된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제거되는 ‘잡음’이 실은 시스템의 복원력을 떠받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지러움을 견디는 용기
물론 모든 무질서가 축복인 것은 아니다. 하포드도 혼돈 자체를 옹호하지 않는다. 그가 겨냥하는 것은 정리가 언제나 해답이라는 무비판적 전제다. 어떤 맥락에서 질서가 돕고 어떤 맥락에서 방해하는지 분별하라고 그는 말한다.
이 책은meaning 역설의 형태로 끝난다. 키스 재릿은 결함 있는 피아노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받았고, 바로 그 순간 능력의 상한선이 확장됐다. 완전한 조건이 갖춰졌다면 그날 밤 쾰른의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현대인을 지배한다. 하포드의 책은 그 욕망에 제동을 건다. 삶을 정돈하려는 시도가 삶 자체를 축소할 수 있다는 것. 완벽한 계획의 실패가 완벽한 즉흥의 성공보다 못할 때가 있다는 것. 어지러운 책상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메모 한 장이 인생의 방향을 틀어놓을 수 있다는 것.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불완전함을 견디는 능력이야말로 완전함을 향해 가는 길이라는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