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활자의 냄새, 두려움의 냄새 — 비밀의 책

「비밀의 책」 (The Book of Secrets) · 안나 마촐라 / Anna Mazzola · 옮긴이 유소영 · 북레시피 · 2023

비밀의 책 표지
「비밀의 책」 (2023)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안나 마촐라는 역사 범죄 소설 장르에서 꾸준히 이름을 쌓아온 작가다. 그녀가 『비밀의 책』을 위해 16세기 베네치아 인쇄 문화와 종교재판소의 작동 방식을 연구한 흔적은 이 소설 곳곳에서 먹과 종이의 냄새로, 세관원의 눈을 피해 금서를 운반하는 긴장으로 되살아난다. 『타임스 문예부록』의 사라 두넌트는 그 결과물을 두고 “진정으로 이질적인 베네치아”라고 평했다. 우리 시대의 감각으로는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공포와 가정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뜻이다.

1567년.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를 발명한 지 백여 년, 인쇄술은 지식의 전파만큼이나 이단의 전염을 가능케 한 위험한 기술이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상업과 문화의 교차로인 동시에 종교 갈등의 최전선이기도 했다. 인쇄기는 계몽의 도구였으나, 동시에 이념 전쟁의 무기였다. 이 양면성 한가운데로 마촐라는 자신의 주인공을 밀어넣는다.


인쇄소의 딸, 금서의 상속자

조반나는 아버지의 인쇄소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이다. 어느 날 그녀는 금지된 텍스트와 연금술 공식, 이단적 명제를 목록화한 원고를 발견한다. 아버지가 종교재판에 체포되면서 조반나는 첩자와 학자, 광신도가 뒤엉킨 미로 속으로 내던져진다. 이 “비밀의 책”은 서사적 장치인 동시에 상징이다. 누가 지식을 통제하는가. 어떤 해석이 허용되는가. 위험한 사상을 보존하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조반나는 현대적 페미니스트를 16세기 의상에 집어넣은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대의 피해자로만 그려지지도 않는다. 자신의 계급이 허용하는 좁은 자유 안에서 그녀는 지능과 때때로의 무모함으로 움직인다. 마촐라는 그녀에게 진정한 도덕적 모호함의 순간을 허락한다. 자기 보존과 타인 보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 그 선택은 독자에게도 쉽지 않게 느껴진다.


감시의 눈, 밀고의 귀

마촐라의 베네치아는 관광 엽서 속 수상 도시가 아니다. 쓰레기 냄새가 나는 운하, 촛불 아래 활자를 조판하는 비좁은 작업장, 이단의 속삭임을 엿듣는 밀고자가 서성이는 교회당. 이웃이 이웃을 고발하고, 가족의 충성마저 종교적 공포 앞에서 휘어진다. 편집증이 공기처럼 두텁다.

종교재판관들은 만화적 악당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성한 사명을 완전히 믿는 사람들이며, 그것이 이들을 더욱 무섭게 만든다. 잘못된 책 한 권이 고문과 죽음을 의미하던 시대. 소설은 검열과 금지된 지식, 그리고 위험한 사상을 지키는 용기에 대해 사색한다. 무엇을 읽어야 하고 무엇을 읽지 말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현대의 논쟁과 이 작품이 불편하게 공명하는 지점이 여기다.

소설의 페이싱이 느리다는 지적도 있다. 액션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답답할 수 있다. 그러나 천천히 쌓이는 긴장은 마촐라의 의도에 봉사한다. 폭력이 올 때 그것은 진짜 충격으로 다가온다.


태운 책은 기억된다

16세기 베네치아를 다룬 소설을 21세기 한국에서 읽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너무 쉬운 질문이다. 결말이 역사적 현실에 비해 다소 깔끔하게 정리된다는 비판이 있고, 일부 조연 인물이 도식적이라는 한계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힘은 플롯의 완결성이 아니라 질문의 잔상에 있다.

역설은 이것이다. 책을 금지하고 태우고 저자를 처형한 권력은 역사 속에서 패배했다. 종교재판소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금지한 책들은 살아남았다. 권력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결국 읽혔다. 비밀은 감추어졌기에 전해졌고, 금지되었기에 기억되었다. 실패가 곧 성공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