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의 무게 [BOOK]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 · 프랑수아즈 사강 (Françoise Sagan) · 옮긴이 김남주 · 민음사 · 1959
지난주 퇴근길, 지하철에서 옆자리 청년이 이어폰을 낀 채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화면에 비친 건 음원 앱의 브람스 교향곡 3번이었다. 그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의 선율이 귀에 닿지 않아도 머릿속에 흘렀다. 한때 그 곡을 무한 반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제목이 된 그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처음 읽었을 때다.
1959년 파리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사강이 스물넷에 쓴 세 번째 장편이다. 서른아홉 살의 실내장식가 폴과 스물다섯 살의 시몽이 등장한다. 폴에게는 6년째 이어온 연인 로제가 있다. 로제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여자들과 밤을 보내고, 폴은 그것을 알면서도 관계를 끊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몽이 묻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콘서트에 함께 가자는 초대다.
사강은 이 단순한 질문에 소설 전체의 무게를 실었다. 브람스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것은 음악 취향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겠느냐, 당신의 익숙한 불행을 버리고 낯선 가능성을 택하겠느냐는 물음이다. 시몽의 질문에는 젊음의 열정(熱情)과 조급함이 함께 들어 있다. 폴의 망설임에는 나이 든 여자가 어린 남자에게 기대도 되는가, 라는 사회적 시선과 자기 검열이 얽혀 있다.
소설이 발표된 1959년은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연상의 여성과 연하의 남성 관계가 스캔들로 소비되던 시절이었다. 사강은 그 금기를 정면으로 건드리면서도 자극적 묘사 대신 권태와 욕망 사이를 오가는 심리의 결을 좇았다. 로제의 무심함에 상처받으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폴, 그 폴을 차지하고 싶으면서도 불안에 휩싸이는 시몽. 사강은 이 둘 사이에서 누가 옳은지 판정하지 않는다. 그저 둘 다 외롭다는 것만 보여줄 뿐이다.
사강 문학의 힘은 도덕적 훈계를 거부하는 데 있다. 열여덟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데뷔해 단숨에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는 평생 사랑의 불완전함을 썼다. 완전한 사랑은 지루하고, 불완전한 사랑만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듯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폴도 결국 선택을 내린다. 그 선택이 해피엔딩인지 비극인지는 독자마다 다르게 읽힐 터다.
오늘날 이 소설을 펼치면 1959년 파리가 아니라 2020년대 서울이 겹쳐 보인다. 연애의 형식은 달라졌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묻는 질문의 무게는 그대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고 묻거나, 그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둘 중 하나다. 확신 없이 질문하고, 확신 없이 대답하며, 확신 없이 함께 걷는다. 사강은 그 확신 없음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누군가 그렇게 물어왔다면 아마 음악 이야기인 줄 알고 교향곡 목록이나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니 소설 속 폴보다 훨씬 둔한 사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