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거짓말쟁이의 유산 — 자기 앞의 생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i (The Life Before Us)) · 에밀 아자르 / 로맹 가리 (Émile Ajar / Romain Gary) · 옮긴이 용경식 · 문학동네 · 1975
두 번의 왕관, 하나의 얼굴
1975년 공쿠르상 수상작 발표일, 프랑스 문단은 신인 ‘에밀 아자르’의 등장에 열광했다. 《뉴욕 타임스》의 아나톨 브로야드는 이 소설을 두고 “소설의 가능성을 재발명하는 것 같은 목소리”라고 썼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이미 1956년 같은 상을 받은 로맹 가리라는 것을. 한 사람이 공쿠르상을 두 번 받는 일은 규정상 불가능하다. 가리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 대가로 자신의 죽음 이후에야 진실이 밝혀지게 했다. 스캔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것이 스캔들이 아니라 필연이었음을 알게 된다.
열 살인지 열네 살인지 모르는 아이
모모는 자기 나이를 모른다.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도, 국적도, 출생증명서도 없다. 그가 아는 것은 벨빌의 6층 아파트에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산다는 것, 그리고 아줌마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모모가 사용하는 언어는 이상하다. 잘못 들은 단어들, 오해한 개념들, 어른들의 의학 용어를 흉내 낸 표현들이 뒤섞여 있다. 그런데 이 틀린 말들이 어른들의 바른 말보다 더 정확하게 세상을 찌른다. 가리가 필명을 써야 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이렇게 무방비하게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괴물과 수호자 사이
로자 아줌마는 예순다섯 살의 전직 창녀(娼女)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성매매 여성들의 아이를 맡아 키운다. 살이 너무 쪄서 6층 계단을 오를 때마다 “조금씩 죽는 것 같다”고 모모는 말한다. 이 한 문장에 노쇠(老衰)와 빈곤의 모든 비극이 담겨 있다. 그녀는 괴물처럼 생겼다. 그러나 그 괴물이 모모에게는 세상의 전부다. 모모는 아줌마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훔치고, 어른들을 속인다.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할 줄 모르면서 사랑의 모든 행위를 실천한다.
벨빌, 버려진 자들의 공화국
벨빌은 파리의 이민자 빈민가다. 아랍인, 유대인, 아프리카인, 성전환자, 중독자들이 섞여 산다. ‘체면 차리는 사회’가 보지 않으려는 곳이다. 《가디언》의 니콜라스 레자드는 이 공간을 “소설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불렀다. 맞다. 이곳에서 독일인 택시 운전사는 죄책감을 말하면서도 그 죄가 무엇인지 끝내 밝히지 않고, 성전환자 롤라 아줌마는 누구보다 따뜻한 모성을 보여준다. 가리는 이 인물들을 기형(奇形)으로 그리되 결코 캐리커처로 만들지 않는다. 존엄은 외양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이 증명한다.
2024년의 벨빌
이 소설이 1975년 프랑스에서 쓰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파리 외곽의 이민자 밀집 지역,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 서류 없는 아이들. 지금 유럽이 직면한 문제들이 반세기 전에 이미 여기 있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너무 늦게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리는 벨빌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랑이 있다고, 그 사랑이 깨끗하지 않아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거짓 이름으로 참된 것을 쓴 작가답게.
소설의 마지막, 모모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단순한 말이다. 그러나 로자 아줌마의 시신 곁에서 며칠을 버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단순함이 곧 진실의 무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