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가정법으로 쓰인 삶: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사물들」 (Les Choses: Une histoire des années soixante) · 조르주 페렉 (Georges Perec) · 옮긴이 김명숙 · 펭귄클래식코리아 ·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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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주로 가정법 안에서 존재한다.” 존 업다이크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두고 남긴 평이다. 1965년 파리, 젊은 부부 제롬과 실비는 원하고, 상상하고, 갈망한다. 그러나 소유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소유하는 순간 이미 그 물건은 원했던 것이 아니게 된다. 페렉은 소설 전체를 조건법과 미완료 시제로 적는다. “그들은 좋아했을 것이다”, “그들은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조건과 가정만 있고 완료와 충족은 없는 문장들. 시제 선택 하나로 이 커플의 삶 전체가 드러난다.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 속에 영원히 유예된 존재들.

두 사람은 파리에서 시장조사원으로 일한다. 타인의 소비 욕망을 설문하고 분석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욕망에 잠식당한다. 아이러니를 넘어서 존재론적 조건이다. 그들은 체스터필드 소파를 원하는 게 아니다. 체스터필드가 암시하는 교양, 여유, 세계와의 특정한 관계를 원한다. 페렉이 보들리야르보다 먼저 파악한 것이 있다. 소비사회에서 물건은 사물로서가 아니라 기호로서 기능한다는 것. 물건을 산다는 건 기호를 사는 일이다. 그래서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기호는 사라지고, 다시 다른 기호를 찾아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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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단순한 물질주의 비판으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페렉의 목록들—영국제 안락의자, 골동품 상점들, 상상 속 아파트의 배치—에는 진짜 서정이 있다. 미학적 쾌락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요점이다. 소비 욕망이 외부에서 주입된 허위의식만은 아니라는 것. 욕망은 의미와 질서를 향한 인간의 진정한 필요에 기대어 있다.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갈망, 아름다운 것에 둘러싸이고 싶은 충동. 페렉은 그 충동을 비웃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제롬과 실비가 튀니지로 도주하는 대목이 있다. 파리의 순환하는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남은 이국에서,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실패한다. 그들은 프랑스로 돌아와 다시 갈망한다. 다만 이번에는 예전보다 작게 꾼다. 소설의 결말은 지방 도시에서의 안정된 직장과 삶인데, 이건 해결이 아니라 축소(縮小)다. 꿈이 쪼그라들었을 때의 조용한 공포. 욕망이 사라진 게 아니라 천장이 낮아진 것이다.

가브리엘 조지포비치는 이 소설의 예언적 성격을 지적했다. 1965년에 쓰인 텍스트가 이후 수십 년간 더 심화될 조건을 정확히 진단했다는 것이다. 제롬과 실비의 의식은 이미지들에 의해 식민화되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진정한 필요와 제조된 욕망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 진단은 동시대인들보다 앞서 있었고, 오늘날에는 더욱 적확해 보인다.

페렉에게 부재(不在)란 늘 중심 주제였다. 『사물들』에서 제롬과 실비는 과거가 없다. 언급할 만한 가족도 없다. 소유하지 못한 물건들과의 관계로만 정의되는, 투명한 인물들이다. 10년 뒤 그가 쓸 『W 혹은 유년의 기억』은 홀로코스트에서 잃은 어머니에 대한 책이다. 두 작품 사이에 형식적 실험이 있지만, 관통하는 것은 같다.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이 없다. 그 빈자리를 무엇이 채우는가. 『사물들』에서는 물건들이, 『W』에서는 글쓰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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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소설에서 불편했던 건 공범이 되는 느낌이었다. 페렉의 목록을 읽으면서 나도 저 체스터필드를 원하게 된다. 완벽하게 배치된 인테리어, 잡지 사진처럼 정돈된 삶. 소설은 해부하면서 동시에 유혹한다. 독자를 바깥에 세워두지 않는다. 읽는 행위 자체가 욕망의 목록에 참여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편하지 않다.

60년 전 프랑스 소설이 오늘 이곳에서 유효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더 많이 갖게 됐지만, 오히려 더 많이 갈망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넓어졌고 소파가 좋아졌다. 배송은 빨라졌고 선택지는 늘었다. 그런데 만족은 어디 갔나. 페렉은 영구적 불만족의 조건을 예언했다. 그 조건 안에서 우리는 아직 산다. 아니, 그 조건이 더 강화된 세계에서 산다.

당신은 어떤가. 마지막으로 뭔가를 사고 나서 충족감이 얼마나 갔나. 이틀인가, 하루인가, 한 시간인가. 그 물건을 원할 때의 당신과 가진 뒤의 당신 중 누가 더 생생했나. 『사물들』은 대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만 건넨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모두 제롬이고 실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