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점거당한 시간, 해부된 자아 — 단순한 열정
「단순한 열정」 (Passion simple) ·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 옮긴이 최정수 · 문학동네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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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로런 콜린스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두고 “집착의 현상학”이라 불렀다. 1991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 얇은 책이 삼십여 년이 지난 뒤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다시 읽히고 있다. 사랑 이야기라기엔 너무 건조하고, 고백록이라기엔 너무 냉정하다. 에르노는 유부남 외교관과의 정사(情事)를 기록하되, 그것을 문학으로 만들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서사의 기승전결도, 인물의 내면 묘사도, 대화의 재현도 없다. 상대 남자는 오로지 ‘A’라는 기호로만 존재하며, 그의 외모나 성격, 직업적 이력은 철저히 비어 있다. 독자가 얻는 것은 한 여성이 다른 인간에게 전적으로 점거(占據)당한 상태의 임상 기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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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노의 방법론은 “문학 아래를 쓴다”는 그녀 자신의 표현에 응축되어 있다. 장식을 걷어내고, 비유를 삭제하고, 감정의 수사를 제거한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기다림의 목록이다. 전화벨 소리, 현관 앞에 멈추는 자동차의 엔진음, 만남과 만남 사이의 공백. 그녀는 욕망이 시간 자체를 재편한다고 쓴다. 이 남자와의 다음 만남까지의 간격만이 유일하게 의미 있는 시간 단위가 된다.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으며, 친구를 만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비극으로도, 후회로도 제시되지 않는다. 날씨를 보고하듯 담담하게 진술된다. 문장은 짧고, 선언적이며, 거의 관료적 문체에 가깝다. 그런데 바로 이 극단적 절제가 역설적 강렬함을 낳는다. 서정(抒情)을 배제한 산문이 오히려 서정보다 더 강한 정서적 잔상을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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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은 때때로 에르노를 과잉 노출로 비판했으나, 이는 그녀가 수행하는 작업의 본질을 놓친 것이다. 그녀는 고백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부(解剖)하려 한다. 자기 경험을 민족지학의 자료처럼 다루며, 열정의 증상을 질병 관찰 기록처럼 적는다. 주체이면서 동시에 관찰자인 이 이중 의식이 책의 기이한 힘을 만든다. 《가디언》의 리사 알라다이스가 지적했듯, 에르노는 열정의 낭만화도 도덕적 단죄도 거부한다. 그녀는 찬양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오직 관찰한다. 그 결과물은 고백적이면서 차갑고, 내밀하면서 거리를 둔 텍스트다. 에르노가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며 “식민화되었다”는 단어를 쓸 때, 그 정치적 공명은 우연이 아니다. 열정은 권력의 구조를 통해 작동하며, 가장 사적으로 느껴질 때조차—아니 바로 그럴 때—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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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은 단순하지 않다. 축소에 모든 것을 건 책이며, 덜 보여줌으로써 더 많이 드러낼 수 있다는 모험이다. 정서적 정화를 찾는 독자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서사의 완결도, 성장의 궤적도, 깔끔한 해결도 없다. 정사는 끝나고, 삶은 계속된다. 그러나 에르노의 기획에 공명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드문 선물을 건넨다. 사적 경험이 법의학적 정직함으로 해체될 때 찾아오는 인식(認識)의 충격, 불편한 자기 대면의 순간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 존재의 유일한 지평이 되어버릴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르노는 그것을 쓴다. 연애의 당사자가 아닌 우리에게도 그 질문은 낯설지 않다. 주식 호가창이든, 정치 뉴스든, 알고리즘이 선별한 동영상이든, 어떤 한 가지에 온전히 점거당한 삶이 우리 시대에 그다지 희귀한 풍경인가. 에르노가 해부한 것은 열정만이 아니라, 점거되기를 허락한 자아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