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돌 속에서 그녀를 꺼내는 데 60년이 걸렸다 — 그녀를 지키다

「그녀를 지키다」 (Veiller sur elle) ·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Jean-Baptiste Andrea) · 옮긴이 정혜용 · 밝은세상 · 2023

수도원의 비밀

이탈리아 어느 수도원. 노인이 보이지 않는 것을 지킨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조각상, 전설처럼 떠도는 걸작. 그는 수사(修士)가 아니다. 신을 믿지도 않는다. 다만 돌을 믿는다. 그리고 돌 안에 새긴 한 여자를 믿는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소설 ‘그녀를 지키다’는 이 늙은 조각가 미모의 회상으로 시작해 과거로 나선형을 그린다. 회상의 끝에서 독자는 비로소 그가 무엇을 지켜왔는지 알게 된다.

미모는 왜소증을 안고 태어났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그런 몸은 곧 유기였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세상이 설계한 모욕 속에서 자랐다. 그에게 구원은 대리석이었다. 돌 안에서 형상을 ‘보는’ 능력, 조각가들이 신비라고 부르는 그 시선을 그는 타고났다. 토스카나의 한 영지에서 그는 비올라 오르시니를 만난다. 그녀는 귀족이다. 특권이 그녀를 가뒀고, 신분이 그녀를 조각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린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사랑이었다.

조각은 기다림이다

제임스 우드는 이 소설이 파르 라게르크비스트의 ‘난쟁이’나 쥐스킨트의 ‘향수’와 같은 계보에 있다고 썼다. 소외된 존재의 눈으로 사회 전체를 비추는 유럽 소설의 전통. 미모의 왜소한 몸은 르네상스의 유산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기념비적 조각상으로 스스로를 빚던 무솔리니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국가가 웅장한 대리석상을 세울 때, 미모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돌을 깎았다. 역사의 소음 바깥에서.

앙드레아가 조각 작업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이 소설의 정점이다. 돌의 저항, 목구멍을 덮는 분진, 혼돈에서 얼굴이 솟아오르는 순간. 언어로 촉각을 전달하는 드문 성취다. 미모에게 조각이란 돌 안에 이미 존재하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그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다. 재료가 비밀을 내어줄 때까지 기다린다. 이 인내는 그가 비올라를 사랑하는 방식과 닮았다. 그녀 곁에 있되 손대지 않고, 바라보되 소유하지 않는다. 60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흐른다.

소설의 중심에는 ‘피에타 비바’라는 조각상이 있다. 살아 있는 피에타. 성모가 아들의 시신을 안은 전통적 도상을 뒤집는 무언가. 미모가 평생을 바쳐 완성한 이 작품은 소설 내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본 사람은 극소수다. 독자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그 정체를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눈물이 정당한 이유는 500페이지의 축적 덕분이다.

지킨다는 것

제목 ‘그녀를 지키다’의 ‘그녀’는 이중적이다. 조각상이기도 하고 비올라이기도 하다. 돌로 새긴 여자와 살아 있는 여자. 미모는 둘 모두를 지킨다. 하지만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유가 아니다. 간섭도 아니다. 그것은 거리를 유지한 채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일이다. 세상이 그녀를 잊어도 나는 기억하겠다는 다짐. 그 다짐을 몸으로 이행하는 것.

이 소설이 21세기에 읽히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다. 우리 시대의 사랑은 대체로 소유를 전제한다. 연인의 시간을 점유하고, 관심을 독점하며, 관계를 계약으로 정의한다. 미모의 사랑은 그 반대편에 있다. 불가능성을 조건으로 성립하는 사랑. 실현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완전한 사랑. 통속적 멜로드라마와 구별되는 지점이 여기다. 앙드레아는 두 사람을 결합시키지 않음으로써 이 관계를 고결하게 만든다.

물론 한계도 있다. 비올라는 상징으로서 너무 완벽하다. 도달할 수 없는 연인, 차가운 돌의 살아 있는 대응물. 앙드레아는 그녀의 내면을 암시하지만 충분히 부여하지는 않는다. 미모에게 쏟아진 의식의 밀도가 비올라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파시즘 시대를 다루는 중반부는 역사적 충실함을 위해 서사의 추진력을 희생한다. 인내심 있는 독자를 요구하는 소설이다.

완성된 것은 살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묻는다. 아름다움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추한 세상에서, 부서지는 몸으로,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해 손을 뻗는 일. 그것이 예술이라면, 예술가의 조건은 결핍이다. 미모는 자신의 왜소한 몸이 없었다면 그 시선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이 그를 배제했기에 그는 세상을 볼 수 있었다.

2023년 공쿠르상은 이 소설에 돌아갔다. 심사위원들이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느린 서사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속도의 시대에 느림을 고집하는 용기. 관계의 시대에 거리를 유지하는 품위. 완성의 시대에 미완을 껴안는 지혜. 앙드레아의 문장은 지나치게 아름답고, 소설은 지나치게 완결되어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작품의 역설이다. 조각처럼 너무 완벽해서 살아 숨 쉬지 못하는 소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소설.

미모가 60년 동안 지킨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조각상이었을까, 여자였을까, 아니면 사랑 자체였을까. 아마도 셋 모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셋은 결국 하나였을 것이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영원한 것. 도달하지 못했기에 계속 걸어가는 것. 실패했기에 성공한 사랑. 이 소설은 그런 역설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