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유리구두는 원래 벗겨지게 생겼다 — 아노라

「아노라」 (Anora) · 션 베이커 (Sean Baker) · 2024

아노라 (2024) 이미지
「아노라」 (2024) 이미지 © TMDb

지난주에 〈프리티 우먼〉을 다시 틀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추천해서. 35년 된 영화를 보면서 나는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줄리아 로버츠는 정말 예뻤다. 둘째, 나는 이 영화의 해피엔딩을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다. 리처드 기어가 리무진을 타고 돌아오는 장면에서 심장이 뛴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건 그냥 동화니까. 문제는 그 동화가 30년 넘게 할리우드 로맨스의 기본 문법으로 작동해왔다는 것이다.

션 베이커의 〈아노라〉는 그 문법책을 찢는다. 찢고 나서 불에 태우고, 재를 브라이튼 비치 바닷바람에 날린다.

마이키 매디슨이 연기하는 애니는 브루클린의 스트립클럽에서 일하는 여자다. 그녀는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VIP 손님을 배정받는다. 손님은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아들. 애송이 같고 철없고 돈이 너무 많다. 둘은 만나고, 놀고,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 결혼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프리티 우먼〉의 2024년 버전이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에서 왕자를 만나 유리구두를 신는다. 관객은 여기서 해피엔딩을 기대해도 된다. 나도 잠깐 기대했다. 속았다.

영화의 중반부는 갑자기 장르가 바뀐다. 러시아에서 날아온 왕자의 부모가 보낸 사람들—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세 명—이 신혼집에 들이닥친다. 결혼을 무효화하기 위해서. 그들은 애니를 잡고, 왕자님은 도망치고, 영화는 스크루볼 코미디가 된다. 비명을 지르는 신부와 그녀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는 세 명의 깡패가 뉴욕 거리를 질주한다. 이건 올해 본 코미디 중 가장 물리적으로 치열한 장면들이다. 웃기다. 정말 웃기다. 그래서 나는 또 속았다.

션 베이커의 카메라는 이상한 방식으로 얼굴을 찍는다. 〈탱거린〉에서도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도 그랬다. 그는 주변부의 인물들을 찍으면서 그들에게 존엄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존엄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아노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애니는 영리하고 강인하고 자기가 하는 게임의 규칙을 안다. 문제는 그 규칙을 누가 썼는지 영화가 묻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을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커는 친절한 감독이 아니다.

마지막 장면. 주차된 차 안. 애니와 영화 내내 그녀를 쫓아다녔던 남자 중 하나가 앉아 있다. 대사 없이. 그 장면이 끝나는 방식을 여기에 쓰지 않겠다. 스포일러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장면을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이것만 말하겠다. 최근 몇 년간 본 엔딩 중 가장 파괴적이었다. 웃음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질문이다. 누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 누가 그냥 돈을 지불한 것인가.

마이키 매디슨의 연기는 대단하다. 이건 내가 쉽게 쓰지 않는 표현이다. 연기가 대단하다고 말하면 보통 아무 의미 없는 수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디슨은 다르다. 그녀는 애니가 연기하는 친밀함과 애니의 진짜 감정 사이에 구분선을 긋지 않는다. 그게 의도다. 애니 자신도 그 구분선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친밀함을 퍼포먼스해온 사람에게 진짜 친밀함이 주어졌을 때, 그것은 또 다른 거래처럼 느껴진다. 이건 이 영화의 가장 슬픈 지점이다.

브라이튼 비치는 맨해튼의 평행세계처럼 그려진다. 러시아어 간판, 러시아 음식, 러시아 돈. 미국 안의 또 다른 나라.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화충돌은 영화에 희극적 에너지를 준다. 하지만 베이커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더 보편적이다. 따뜻함을 상품화하도록 훈련받은 세계에서, 결혼과 거래의 차이는 서류뿐이라고. 이 문장을 쓰면서 나는 내가 너무 비관적인 사람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그렇게 말한다. 내 탓이 아니다.

나는 동화를 좋아한다. 〈프리티 우먼〉도 나쁘지 않다. 가끔은 거짓말이 필요하니까. 문제는 우리가 그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기 시작할 때 생긴다. 〈아노라〉는 그 믿음을 교정해준다. 아프게.

요즘 청년들이 연애를 안 한다고 한다. 결혼도 안 한다고 한다. 기사마다 이유를 분석한다. 경제적 문제, 가치관 변화, 개인주의. 나는 다른 이유를 하나 추가하고 싶다. 어쩌면 그들은 션 베이커의 영화를 본 것처럼 유리구두의 진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리구두는 원래 벗겨지게 생겼다. 밤 열두 시가 아니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