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이
방주 傍註
SF 웹소설 작가
방주의 장르 일기
SF 웹소설을 쓰며 장르 영화와 OTT 시리즈의 옆에서 주석을 단다. 짧은 호흡의 글을 좋아한다. 신상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려 가끔은 나 아닌 것 같은 글도 쓴다.
총 47편
- 「서브스턴스」
거울 앞에서 벌어지는 전쟁 — 서브스턴스
영화가 불편해야 좋은 건가, 아니면 좋은 영화가 불편한 건가. 코랄리 파르지아의 <서브스턴스>를 보고 나면 이 질문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불편함은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그 수단은 정확히 겨냥한 곳을 찌른다.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패배자의 유산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새벽안개가 오리건 주의 산등성이를 덮고 있다. 카메라는 천천히 내려와 정신병원의 회색 건물을 비춘다. 잠긴 문, 철창, 하얀 복도. 그리고 곧 이 정적을 박살 낼 한 남자가 경찰차에서 내린다. 랜들 패트릭 맥머피. 수갑을 찬 채로도 그는 웃고 있다. 밀로스 포먼의 카메라는 그 웃음을 오래 담는다. 마치 이 웃음이 곧 사라질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 「늑대의 혈족」
늑대의 혈족
크리스토프 간스는 비디오게임 원작 영화 〈크라잉 프리먼〉의 감독이다. 이 문장을 쓰면서 나는 이미 절반의 독자를 잃었을 것이다. 비디오게임 원작 영화 감독이라니. 하지만 간스에게 〈크라잉 프리먼〉은 단순한 데뷔작이 아니라 선언문이었다. 홍콩 액션의 발레적 폭력과 유럽 아트하우스의 시각적 세련됨을 결합하겠다는. 그리고 마크 다카스코스는 헐리우드가 20년…
- 「천국과 지옥」
언덕 위의 방과 언덕 아래의 방 — 천국과 지옥
《영국의 한 영화지》의 톰 밀른은 이 영화를 두고 "일본 사회의 수직적 계층화를 체계적으로 해부한다"고 썼다. 정확한 진단이다. 다만 '해부'라는 단어가 품은 냉정함으로는 이 영화가 관객의 가슴팍에 들이미는 날것의 불쾌함을 설명하기 어렵다.
- 「아포칼립토」
숲에서 도망친 자, 숲에서 끝나는 자 — 아포칼립토
열대우림의 습한 공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맷돼지 한 마리가 숲을 가로질러 도주하고, 젊은 사냥꾼들이 그 뒤를 쫓는다. 덫이 작동하고, 창이 날아간다. 피가 튀고, 남자들은 웃는다.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는 이렇게 시작한다. 평화로운 마을의 일상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곧 도래할 폭력의 예고편이다. 사냥감과 사냥꾼의 위치는 90분 뒤 뒤바뀌게 된다.…
- 「대부 2」
아버지의 빛, 아들의 그림자 — 대부 2
속편은 왜 실패하는가. 이 질문은 오래 품어왔다. 대개의 속편은 전작의 성공 공식을 복제하려다 활력을 잃거나, 확장을 시도하다 중심을 놓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2》(1974)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자, 속편이라는 형식 자체를 재정의한 작품이다.
- 「에이펙스」
도망치려고 나선 곳에서 도망쳐야 할 때 — 에이펙스
몇 해 전, 지도 앱에서 호주 내륙을 한참 들여다본 적 있다.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도로가 안 나왔다. 거기선 길을 잃는 게 아니라 길 자체가 사라진다. 그때 든 생각—저런 곳에 일부러 들어가는 사람은 뭔가를 찾으려는 게 아니라 뭔가를 지우려는 거겠구나.
-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극장이 불타기 전에 —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크리스토프 발츠는 2009년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 전까지 오스트리아 TV 배우였다. 독일어권 밖에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타란티노는 캐스팅 과정에서 수백 명의 배우를 만났고, 그때마다 똑같은 절망을 느꼈다고 한다. 대사가 요구하는 언어적 유희—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악역—를 소화할 배우가 없었다.…
- 「유어 폴트」
《유어 폴트》: 넷플릭스가 발명한 영원한 오해의 공식
《유어 폴트》는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로맨스의 시뮬라크럼, 그러니까 '로맨스처럼 보이는 무엇'을 120분 동안 재생하는 알고리즘적 산물에 가깝다. 메르세데스 론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3부작의 두 번째 편. 전작 《마이 폴트》에서 시작된 노아(니콜 월리스)와 닉(가브리엘 게바라)의 관계는 여전히 위태롭고,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아무 문제도…
- 「티켓 투 파라다이스」
스타 파워라는 고고학 — 티켓 투 파라다이스
2010년대 이후 극장에서 개봉한 스튜디오 로맨틱 코미디의 수는 급감했다. 스트리밍이 그 자리를 가져갔고,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마블과 IP 프랜차이즈에 자원을 집중했다. 그 흐름 속에서 <티켓 투 파라다이스>는 거의 고고학적 발굴물처럼 느껴진다. 《버라이어티》의 오언 글라이버먼은 이 영화를 두고 "조지 클루니와 줄리아 로버츠가 여전히 미국 영화에서 가장…
- 「직장의 로맨스」
직장의 로맨스: 소비에트가 낳은 가장 유쾌한 항복
회색 통계국 사무실. 서류 더미 사이로 구부정한 남자가 걸어간다. 아나톨리 노보셀체프(안드레이 먀흐코프)는 자신이 투명인간이라는 사실을 이미 체득한 중년이다. 카메라가 그를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소비에트 관료제의 미로를 함께 통과한다. 복도 끝, 문이 열리고 류드밀라 칼루기나(알리사 프레인들리흐)가 등장한다. 냉담한 시선, 완벽한 정장. 부하직원들이…
- 「슈퍼맨」
하늘에 머뭇거리는 남자 — 슈퍼맨
지난달, 또 한 편의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서가 아니라 더 볼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다. 집에 돌아와 어릴 적 본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을 떠올렸다. VHS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봤던 그 영화. 빨간 망토가 바람에 펄럭이던 기억. 그리고 그게 왜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지 생각했다.
- 「아메리칸 히스토리 X」
아메리칸 히스토리 X
1998년 FBI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혐오범죄 가해자의 평균 연령은 스물네 살이었다. 토니 케이의 「아메리칸 히스토리 X」는 이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묻는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봤고, 세 번 모두 같은 지점에서 불편해졌다.
- 「어벤져스: 엔드게임」
팬덤의 장례식, 혹은 성대한 작별 — 어벤져스: 엔드게임
《버라이어티》의 오웬 글라이버만은 이 영화를 "관객의 10년치 투자에 대한 이자 지급"이라고 썼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정확하니까.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영화라기보다 정산서(精算書)다.
- 「아바타: 파이어 앤 애쉬」
카메론은 왜 나비족끼리 싸우게 만들었나 — 아바타: 파이어 앤 애쉬
검은 재가 눈처럼 내린다. 화면 전체를 뒤덮는 회색 미립자 사이로, 식어가는 용암 위를 나비족이 달린다. 푸른 피부 위로 반사되는 건 생체발광의 영롱한 빛이 아니라 마그마의 붉은 열기다. 《아바타: 파이어 앤 애쉬》는 그렇게 시작된다. 우리가 알던 판도라가 아니다. 관객은 영화 개시 10분 만에 깨닫는다. 이번에는 인간이 적이 아니라는 것을.
- 「12인의 성난 사람들」
밀실의 민주주의 — 12인의 성난 사람들
법원 정면의 육중한 기둥들이 화면을 가른다. 카메라가 천천히 틸트다운하면 계단을 내려오는 군중이 보인다. 재판이 끝났다. 그러나 영화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배심원 열두 명이 좁은 방에 들어선다. 선풍기 하나가 돌아가지 않는다. 누군가 창문을 열지만 바람은 없다. 뉴욕의 여름은 무자비하다. 시드니 루멧의 데뷔작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이 방을 96분…
- 「탑건: 매버릭」
년 후의 연착륙 — 탑건: 매버릭
나는 속편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30년 넘게 묵힌 속편을 믿지 않는다. 그건 대개 팬서비스라는 이름의 관짝 뚜껑을 열어 시체에 립스틱을 바르는 짓이다. 그래서 《탑건: 매버릭》도 안 볼 생각이었다. 1986년 원작? 레이밴 광고에 해군 모병 영상을 끼얹은 영화였다. 그걸 36년 뒤에 다시 꺼낸다고? 한 영국 평론가는 이 영화에 별…
-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새로움을 기대하는 건 아직 가능한 일인가. 2018년 《스파이더맨: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가 나왔을 때, 나는 그것이 예외라고 생각했다. 기적이거나 행운의 착시. 속편이 나오면 결국 공식의 중력에 굴복하리라.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보고 나는 또 내 냉소가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 「토이 스토리 3」
플라스틱의 소각로 — 토이 스토리 3
리 언크리치가 〈토이 스토리 3〉의 감독으로 확정되었을 때, 그는 이미 편집자로서 픽사의 황금기를 함께 만든 인물이었다. 〈토이 스토리 2〉와 〈파인딩 니모〉의 공동 감독이라는 이력은 화려하지만, 단독 연출작이라고는 없었다. 11년 만에 돌아오는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을 '보조 연출자 출신'에게 맡긴다는 건 상당한 도박이다. 그런데 픽사가 그런 도박을 왜…
- 「스파이더맨: 홈커밍」
세 번째 거미는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 스파이더맨: 홈커밍
스파이더맨을 몇 번 더 봐야 하는가. 15년 동안 세 명의 피터 파커가 스크린을 지나갔다. 토비 맥과이어가 입었던 유니폼을 앤드루 가필드가 물려받았고, 이제 톰 홀랜드가 그 자리에 서 있다. 방사능 거미에게 물리는 장면을 또 보고 싶은 관객이 얼마나 되는가. 벤 삼촌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걸 한 번 더 지켜봐야 하는가. 이 질문에 《스파이더맨:…
- 「스파이더맨」
평범함의 물리학 — 스파이더맨
샘 레이미는 「이블 데드」 시절부터 카메라를 땅에서 들어올려 배우 얼굴에 들이미는 버릇이 있었다. 저예산 호러에서는 그게 공포였고, 「다크맨」에서는 복수심이었다. 「스파이더맨」에서 그 카메라는 토비 맥과이어의 커다란 눈을 비춘다.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차마 손을 뻗지 못하는 눈. 레이미가 수백억 원짜리 블록버스터를 맡고도 자기 트레이드마크를 버리지…
- 「파이트 클럽」
총구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 파이트 클럽
카메라가 뇌 속을 헤집고 나온다. 신경세포와 시냅스 사이를 관통해, 두개골을 빠져나와, 마침내 입 안에 박힌 총구 앞에 멈춘다. 남자의 입에 총을 물린 채 서 있는 또 다른 남자.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은 이렇게 시작한다. 결말부터 보여주고, 처음으로 돌아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묻는다.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설계된 눈물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이 영화를 "20년간 이 캐릭터를 본 관객에게 감정 반응을 촉발하도록 과학적 정밀함으로 설계된 작품"이라 불렀다.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나는 바로 그 20년의 관객이기 때문이다. 2002년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부터 모든 버전을 챙겨봤고, "설계된 감정"에 눈물을 흘렸다는 건 굴욕적이다. 하지만 흘렸다. 영화관에서,…
- 「28년 후: 본 템플」
좀비가 문제가 아니다 — 28년 후: 본 템플
물론 분류표에는 호러라고 적혀 있고, 피가 튀고, 감염자들이 뛰어다닌다. 하지만 니아 다코스타가 만든 이 두 번째 영화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스물여덟 해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세대가 자라면 어떤 신앙이 태어나는가. 트라우마는 어떻게 의식으로 굳어지는가. 공포는 어떻게 종교가 되는가.
- 「돌이킬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영화는 끝나고 나서 좋았는지 나빴는지 판단할 수 없다.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이 그렇다. 이 영화를 좋다고 말하면 취향을 의심받고, 나쁘다고 말하면 이해력을 의심받는다. 그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 「쉰들러 리스트」
재현(再現)의 자격 — 쉰들러 리스트
《사이트 앤 사운드》의 Geoffrey Macnab은 <쉰들러 리스트>를 두고 이렇게 물었다. "영화의 본질적인 미학화가 이해를 초월하는 사건에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가?" 1993년에 제기된 이 질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답을 기다린다. 어쩌면 답이 없다는 것이 답일지 모른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불가능성을 알면서도 카메라를 들었다. 상어,…
- 「다크 나이트」
**1** — 다크 나이트
어떤 영화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고들 말한다. 나는 이 표현을 오래 경계해왔다. 대개 그 말의 속뜻은 "이 영화는 당신이 무시해온 장르인데 의외로 괜찮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치고는 깊다, 공포영화치고는 잘 만들었다—칭찬인 척하는 편견이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를 다시 보고 나니, 나 역시 결국 비슷한 말을 하게…
- 「마이 폴트」
마이 폴트: 빨간불이 초록불이 되는 세계
이 영화는 성공했다. 아마존이 개봉 전에 속편을 확정했고, 원작 팬덤은 이미 3부작 완주를 기정사실화한다. 그런데 그 성공이 바로 문제다. 《마이 폴트》는 왓패드에서 태어나 베스트셀러로 자란 메르세데스 론의 소설을 스페인에서 영화화한 작품이다. 의붓오빠와 의붓여동생의 금지된 사랑. 도미니고 곤살레스 감독은 타겟 인구통계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
퇴행의 완성 —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
1977년, 미국 영화는 퇴행했다. 《스타워즈》는 그 퇴행의 완성이다. 《대부》와 《택시 드라이버》가 열어젖힌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복잡성, 도덕적 모호함, 어른의 영화를 조지 루카스는 단번에 뒤집었다. 대신 그가 꺼낸 것은 1930년대 《플래시 고든》 시리얼, 《오즈의 마법사》, 아서왕 전설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유치하다. 의도적으로, 전략적으로,…
- 「탑건」
미소의 물리학 — 탑건
톰 크루즈가 상관에게 위험한 곡예를 부리고 나서 씩 웃는 순간이 있다. 자신만만하고, 소년 같고, 불복종 직전의 미소. 당시 《뉴욕 타임스》의 재닛 매슬린은 그걸 보고 "영화 전체가 하나의 길고 값비싼 미소"라고 썼다. 매력적이고, 얕고, 완전히 거부하기는 어려운.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동의했다. 그리고 또 그 미소에 속았다.
- 「듄」
미완이기에 완성된 영화 — 듄
회색 바다가 절벽 아래서 출렁인다. 폴 아트레이데스가 고향 행성 칼라단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 그는 아직 사막을 모른다. 예언이 자기 삶을 집어삼킬 줄 모른다. 멀리서 파도 소리만 들린다. 드니 빌뇌브의 《듄》은 이 정적의 순간에서 시작한다. 움직임이 아니라 침묵으로, 액션이 아니라 대기의 무게로. 《버라이어티》의 오웬 글라이버먼은 이 영화를 "모래와…
- 「햄넷」
부재의 언어 — 햄넷
지난주에 셰익스피어 전기물을 또 봐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솔직히 한숨부터 쉬었다. 깃펜 들고 고뇌하는 천재, 영감이 번쩍 내리꽂히는 극장, 엘리자베스 시대 복식의 향연. 이 공식을 몇 번이나 더 봐야 하나. 그런데 클로이 자오의 「햄넷」은 그 공식을 처음부터 거부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거의 말이 없고, 그 유명한 독백은 단 한 줄도 들리지…
-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 시간의 건축가가 설계한 청문회
놀란은 줄곧 시간의 구조에 집착해왔다. 〈메멘토〉의 역행, 〈인터스텔라〉의 상대성, 〈테넷〉의 역전. 이번에 그 기술이 향한 곳은 1954년의 보안 청문회장이다. 영화는 컬러와 흑백을 교차하며 두 시간대를 오간다. 하나는 오펜하이머의 심판, 다른 하나는 그를 심판한 루이스 스트로스의 심판. 이 이중 구조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다. 《버라이어티》의 오웬…
- 「세크리터리」
세크리터리
BDSM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망하게 되어 있다. 선정성에 기대 마케팅을 하거나, 진지한 척 병리학 강의를 늘어놓거나. 둘 중 하나로 빠진다. 《뉴욕타임스》의 A.O. 스콧은 스티븐 셰인버그의 <세크리터리>를 "진정으로 도발적이면서 무장해제할 만큼 달콤한" 영화라고 썼다. 도발과 달콤함이 공존하는 영화. 나는 그게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 「포레스트 검프」
《포레스트 검프》는 할리우드가 만든 가장 교활한 보수 판타지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가? 그렇다.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 혁신적인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톰 행크스를 케네디, 존슨, 닉슨 곁에 디지털로 합성해 넣는 시퀀스는 1994년 기준으로 경이롭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직한가? 아니다.
- 「노스페라투」
어둠을 응시하게 만드는 방법 — 노스페라투
내가 좋다고 생각한 영화의 목록은 일관성이 없다. 싫다고 단정한 영화에서 종종 좋은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를 평가할 때 나는 질문을 바꾸는 쪽을 택한다. 이 영화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얻었는가.
- 「미키 17」
봉준호의 가장 멍청한 영화 — 미키 17
이 문장을 곱씹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봉준호는 「설국열차」에서 계급을, 「옥자」에서 육식 산업을, 「기생충」에서 한국 사회의 위아래를 해부했다. 그의 풍자는 늘 날카롭고 복잡했으며, 관객에게 단순한 답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우주 식민지를 배경으로, 빨간 모자를 쓴 독재자가 광신도 무리를 거느리고 등장한다. 마크 러팔로가…
- 「마이클 잭슨: 더 라이프 오브 아이콘」
가족이 만든 초상화 앞에서 — 마이클 잭슨: 더 라이프 오브 아이콘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진실과 사랑 사이의 긴장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족이 그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를 원할까, 아니면 자신들이 알았던 가장 좋은 모습으로 남기기를 원할까. 앤드류 이스텔의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 더 라이프 오브 아이콘》은 이 질문 앞에서 후자를 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이 작품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
- 「펄프 픽션」
재활용의 연금술 — 펄프 픽션
햇살이 쏟아지는 LA의 다이너. 테이블 위에는 커피와 담배 연기. 팀 로스와 아만다 플러머가 마주 앉아 있다. 둘은 은행 강도의 비효율성에 대해 논쟁한다. 레스토랑이 더 낫지 않겠어? 손님들은 영웅 흉내를 안 내거든. 대화는 느긋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두 사람이 총을 뽑아 든다. "Everybody be cool, this is a robbery!"…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92분짜리 승리 행진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가디언》의 벤저민 리는 이 영화를 "92분짜리 승리 행진"이라 불렀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든다. 문제는 행진이 끝나고 남는 게 뭐냐는 거다.
- 「주토피아 2」
바이런 하워드 감독께 — 주토피아 2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얼리히는 이렇게 썼다. "첫 번째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하라고 요청했다. 이 영화는 대부분 느끼라고 요청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키보드 위에서 손을 뗐다. 정확히 내가 쓰려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 「영 앤 뷰티풀」
설명하지 않을 권리 — 영 앤 뷰티풀
프랑수아 오종의 「영 앤 뷰티풀」은 실패한 영화다. 17세 소녀가 왜 몸을 팔기 시작했는지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 트라우마도 없고, 가정폭력도 없고, 경제적 궁핍도 없다. 파리 상류층 가정의 예쁜 딸이 어느 여름 처녀성을 잃고, 가을이 되자 호텔 방에서 중년 남자들을 만난다. 왜? 영화는 모른다고, 혹은 말하지 않겠다고 답한다. 「버라이어티」의 피터…
- 「매트릭스」
전과서의 완성 — 매트릭스
1999년 봄, 나는 극장에서 캐리앤 모스가 벽을 타고 뛰는 장면을 보았다. 그 순간 물리학 교과서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릿타임이라 불리게 될 그 기법 앞에서 시간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정지된 육체 주위를 유영하는 동안 관객들은 숨을 참았다. 워쇼스키 형제가 만들어낸 이 효과는 액션…
- 「쇼군 (Shōgun)」
전쟁을 하지 않는 전쟁 드라마 — 쇼군 (Shōgun)
「쇼군」 피날레를 처음 본 그날, SNS에 뭐라고 쓸까 한참 고민했다. 시즌 2 촬영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그 마지막 회를 떠올린다. 전쟁 드라마가 전쟁을 안 했다. 토라나가와 이시도의 대군은 결국 충돌하지 않았고, 승부는 한 통의 편지와 한 번의 자살로 갈렸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결국 아무것도 올리지 못했다. 뭔가를 쓰려면 먼저 내가…
- 「듄: 파트2」
좋은 예언은 실현되지 않는다 — 듄: 파트2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답을 피해왔다. 정의를 내리는 순간 예외가 생기고, 예외를 인정하면 정의가 무너지니까. 그런데 《듄: 파트2》를 보고 나서는 좀 다른 방식으로 묻게 된다. 좋은 영화는 관객을 어디에 데려다 놓는가. 승리의 광장인가, 패배의 언덕인가, 아니면 둘 다 아닌 어떤 불안정한 경사면인가.
- 「아노라」
유리구두는 원래 벗겨지게 생겼다 — 아노라
지난주에 〈프리티 우먼〉을 다시 틀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추천해서. 35년 된 영화를 보면서 나는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줄리아 로버츠는 정말 예뻤다. 둘째, 나는 이 영화의 해피엔딩을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다. 리처드 기어가 리무진을 타고 돌아오는 장면에서 심장이 뛴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건 그냥 동화니까. 문제는 그…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옷자락이 닳은 향수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20년 만의 속편. 향수의 옷자락이 닳긴 했지만, 옷의 형태는 살아있다. 좋은 속편의 흔치 않은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