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추락의 해부' — 법정이 심판할 수 없는 것

「추락의 해부」 (Anatomy of a Fall) · 쥐스틴 트리에 (Justine Triet) · 2024

추락의 해부 (2024) 이미지
「추락의 해부」 (2024) 이미지 © TMDb

[1] 프랑스 알프스 산장. 인터뷰를 마친 여자 작가가 2층에서 창밖을 본다. 그녀의 남편 시체가 눈밭에 엎어져 있다. 피가 하얀 눈 위에 번진다. 개가 짖고, 시각장애인 아들이 지팡이를 짚으며 현관으로 나선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이렇게 시작해요. 남편은 추락했는가, 추락당했는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이 영화의 물음이죠.

[2] 그러나 트리에 감독의 진짜 관심사는 사인(死因)이 아니에요. 법정이 파헤치는 건 시체가 아니라 결혼이니까요. 독일 출신 소설가 산드라(산드라 휠러)는 남편 살해 혐의로 기소되는데, 프랑스 법정은 미국식 공방전 대신 ‘철학적 토론’에 가깝게 진행돼요. 검사와 변호인이 산드라의 소설을, 남편이 녹음한 부부싸움 파일을 증거로 들이밀죠. 부부간의 시기와 원망, 불륜과 좌절이 공개 법정에서 낱낱이 해부되는 광경은 섬뜩해요. 유죄냐 무죄냐(有罪無罪)를 따지는 재판이 어느새 ‘이 결혼은 실패작이었는가’를 심판하는 자리로 변질되죠. 트리에는 이 과정을 ‘결혼의 부검’이라 부를 법한 냉정함으로 펼쳐 보여요.

[3] 산드라 휠러의 연기가 압권이에요. 그녀는 자신이 무죄라고 확신하지만, 법정이 자신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깨닫지 못해요. 차분함이 무심함으로, 명석함이 교활함으로 오독되는 과정을 휠러는 거의 무표정하게 버텨내요. 관객은 그녀를 믿어야 할지 의심해야 할지 끝까지 갈피를 못 잡게 되죠. 더 흥미로운 건 메타픽션 장치예요. 산드라는 자기 삶을 소설에 녹여 성공한 작가인데, 검찰은 그 소설을 ‘자백’처럼 읽어요.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작가 자신이 해명해야 하는 상황. 진실과 허위(眞實虛僞)의 경계를 증명하라는 요구 앞에서 그녀는 무력해지죠.

[4] 가장 잔인한 건 열한 살 아들 다니엘이에요. 사고로 시력을 잃은 이 소년은 부모의 추악한 비밀을 법정에서 듣고, 마침내 증인석에 서요. 어느 쪽이 이기든 그는 부모 모두를 잃은 셈이죠. ‘승자 없는 재판’의 유일한 패자는 아이라는 트리에의 시선이 가슴을 찌릅니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비슷한 풍경이 자주 눈에 띄어요. 정치든 이혼소송이든 SNS 폭로전이든, 명명백백(明明白白) 진실을 밝히겠다며 모든 걸 공개 심판대에 올리는 시대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제삼자가, 관계의 잔해가 어떻게 되는지 누가 신경이나 쓰는지. 중력은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추락은 누군가의 책임만으로 설명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