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이
차은 車隱
전직 영화담당 기자
차은의 무비홀릭
외국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작은 매체여서 영화리뷰는 언제나 막내인 나의 일. 오랜 타지 생활에도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영화로 우리 시대와 사회를 들여다본다.
총 22편
- 「좋은 친구들」
트렁크 속 괴성, 그리고 우리 — 좋은 친구들
한밤의 고속도로. 차 트렁크에서 둔탁한 쿵쿵 소리가 새어나온다. 세 남자가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자, 피투성이 사내가 손을 뻗는다. 칼이 내리꽂히고, 총성이 울린다. 화면이 정지되며 내레이션이 흐른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난 늘 갱스터가 되고 싶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좋은 친구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 「더 보이즈」
슈퍼맨이 사이코패스라면 — 더 보이즈
어릴 적 나는 슈퍼맨을 진심으로 믿었다. 하늘을 나는 빨간 망토, 총알도 튕겨내는 가슴팍, 그리고 악을 용서하지 않는 정의로움. 그런데 언젠가부터 의문이 싹텄다. 저 남자, 왜 안 늙지? 저렇게 강한 존재가 왜 하필 기자로 위장해 살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가진 자가 과연 '선'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아마존의 시리즈 '더 보이즈'는 정확히 그…
- 「F1」
브래드 피트에게 — F1
당신이 61세에 실제 F1 머신을 몰기 위해 수개월간 드라이빙 훈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톰 크루즈가 '탑건: 매버릭'에서 직접 전투기 조종석에 앉았던 것처럼, 당신도 스턴트맨에게 얼굴을 빌려주는 대신 200마일 속도의 공포를 온몸으로 받아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얼리치는 이 영화를 두고 "눈을 현혹하면서 뇌는 중립 기어에…
- 「세븐」
'세븐',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1] 영국 《사이트 앤 사운드》의 에이미 타우빈은 이 영화의 결말을 두고 "관객을 폭력의 공범으로 만든다"고 썼다. 맞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은 두 시간 동안 우리를 범죄 현장으로 끌고 다니더니, 마지막엔 손에 피를 묻힌 채 극장 밖으로 내보낸다. 우리가 입장료를 내고 이 참혹을 구경하러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듯이.
- 「토이 스토리」
장난감의 불안, 혹은 대체 가능성의 공포 — 토이 스토리
'토이 스토리'는 어린이 영화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만을 위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뉴욕 타임스》의 자넷 매슬린은 이 영화를 두고 "우정과 경쟁에 대한 놀랍도록 정교한 이해"라 평했는데,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다. 이것은 대체 가능성에 대한 공포를 다룬, 성인을 위한 심리극이다.
-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피터 잭슨의 도박** —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이 영화는 실패해야 마땅했다. 뉴질랜드 출신의 B급 호러 감독이 20세기 영문학의 성전(聖典)을 건드리겠다고 나섰을 때, 전 세계 톨킨 신자들의 반응은 분노와 조롱 사이 어딘가였다. 원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 소설을 영상으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도박인지.
- 「기묘한 이야기」
던전의 아이들, 그리고 우리의 잃어버린 지하실 — 기묘한 이야기
1983년 인디애나 주, 어느 교외 주택의 지하실. 형광등 불빛 아래 네 명의 소년이 던전스 앤 드래곤스 보드판을 둘러싸고 앉아 있다. 주사위가 탁자 위를 굴러간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이제 그만 올라와"라고 외치고, 소년들은 자전거를 타고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그중 한 명이 집에 도착하지 못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 「브레이킹 배드」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브레이킹 배드
영국 《가디언》의 마크 로슨은 이 드라마를 두고 "토니 소프라노는 폭력 속에서 태어났지만, 월터 화이트는 폭력을 선택했다"고 썼다. 그 한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태생과 선택. 이 차이가 왜 그토록 불편한가.
- 「유포리아」
무한 접속의 고독, 네온 아래 쪼그라드는 영혼들 — 유포리아
1. 화면이 번진다. 어린 소녀가 알약을 삼키고, 세상이 처음으로 조용해진다. HBO 드라마 '유포리아'의 주인공 루(젠데이아)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으로 평화를 찾았다." 중독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의식이 견딜 수 없을 때 왜 무의식을 선택하는지, 그 절박한 심리를 해부하는 첫 장면이다.
- 「쇼생크 탈출」
교도소에서 모차르트를 — 쇼생크 탈출
[1] 어릴 적 텔레비전 영화채널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다. 한밤중이었고, 중간부터 봤다. 줄거리도 제대로 모른 채 끝까지 봤다. 다음 날 학교에서 졸았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설명이 안 된다. 팀 로빈스가 교도소 스피커로 오페라를 틀고, 죄수들이 운동장에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장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만은…
- 「존 오브 인터레스트」
담장 위에서 해바라기를 가꾸는 사람들 — 존 오브 인터레스트
[1] 화면이 까맣다. 3분 동안 까맣다. 미카 레비의 전자음향이 마치 거대한 기계가 깨어나는 소리처럼 극장을 채우는 동안, 관객들은 무엇이 보일지 기다린다. 마침내 밝아지는 화면 속에선 아버지와 아이들이 강가에서 피크닉을 즐긴다. 햇살이 좋다. 물이 맑다. 개가 뛰논다. 이윽고 가족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카메라가 뒤따르다 보니 저 담장…
- 「헌팅 시즌」
도망칠 곳이 없다 — 헌팅 시즌
[1] 아르헨티나 황야다. 나무들 사이로 안개가 낮게 깔린다. 중년 남자가 딸에게 덫 놓는 법을 가르친다. 손놀림이 느리고 정확하다. 딸은 지루한 표정이다. 세상과 단절한 아버지, 세상이 궁금한 딸. 둘의 평화는 피 묻은 여자가 숲에서 기어 나오는 순간 산산이 부서진다. 클라우디오 보이비안 감독의 '헌팅 시즌'은 이렇게 시작한다.
- 「데드풀과 울버린」
망가진 영웅들의 시대 — 데드풀과 울버린
1. 라이언 레이놀즈가 양복 차림으로 중고차 세일장에 서 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구하지 않는다. 화려한 빨간 슈트는 옷장 깊숙이 처박혀 있고, 입에서는 "이 차 정말 좋습니다, 전 오너가 할머니였어요"라는 딜러 특유의 거짓말이 줄줄 흘러나온다.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웅의 시대가 끝났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영웅이 필요…
- 「그린 마일」
기적을 목격한 자의 의무 — 그린 마일
[1] 3시간 9분.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그린 마일'(1999)이 요구하는 시간이에요. 1935년 루이지애나주 콜드마운틴 교도소 사형수 감방, 그 좁고 눅눅한 복도를 오가는 간수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데 필요한 인내의 양이죠. 요즘 같은 숏폼 전성시대에 관객에게 이 정도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려면 얼마나 도발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까요? 이 영화의…
- 「8번 출구」
출구가 없는 사람들 — 8번 출구
1 미국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얼리치는 이 영화를 두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의 공포, 그리고 기울이지 못하는 것의 더 큰 공포"라고 썼다. 인디 게임 개발자 코타게가 만든 바이럴 게임 '8번 출구'를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형광등 아래 무한 반복되는 지하철 통로를 배경으로 한다. 이름 없는 샐러리맨이 끝없이 같은 복도를 걷는다. 탈출 조건은 단…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효율의 손가락, 칼질의 시대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미국 《버라이어티》의 오언 글라이버먼은 타노스를 두고 "비극적 위엄(tragic grandeur)"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주 생명체 절반을 소멸시키겠다는 광기 어린 목표를 품은 보랏빛 괴물에게 '비극'이라니. 그러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수사가 과장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세요. 조시 브롤린이 연기한 이 디지털 거인은…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호그와트의 밀폐된 공기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어릴 적 나는 백과사전을 통째로 영화화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ㄱ부터 ㅎ까지, 가나다순으로 세상 모든 항목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기획. 당연히 그런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질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을 담으려는 욕심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 「모탈 컴뱃」
착공식의 미학 — 모탈 컴뱃
눈이 내린다. 17세기 일본, 대나무 숲 사이로 한 무사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카메라는 느긋하게 그 정경을 훑는다. 그리고 서리가 창문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찬 기운이 이상하다 싶은 순간, 푸른 갑옷의 사내가 나타나 순식간에 가족을 도륙한다. 피가 땅에 닿기 전에 얼어붙는다. 무사는 정원 도구로 맞서 싸우다 결국…
- 「패스트 라이브즈」
호수 위에 뜬 달을 건지려는 사람들에게 — 패스트 라이브즈
[1]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내 한국계 이민자 수는 약 190만 명이에요. 그중 상당수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건너가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서 자아를 두 번 구축한 사람들이죠.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는 바로 그 틈새에서 태어난 영화예요. 서울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캐나다로 이주한 나영(노라)이라는 여자가…
- 「아임 스틸 히어」
아임 스틸 히어,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
[1] 월터 살레스의 「아임 스틸 히어」는 137분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게 만들어 놓고, 극장을 나선 뒤에야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내가 설명하지 못한다는 건, 좀 불쾌한 일이다.
- 「추락의 해부」
'추락의 해부' — 법정이 심판할 수 없는 것
[1] 프랑스 알프스 산장. 인터뷰를 마친 여자 작가가 2층에서 창밖을 본다. 그녀의 남편 시체가 눈밭에 엎어져 있다. 피가 하얀 눈 위에 번진다. 개가 짖고, 시각장애인 아들이 지팡이를 짚으며 현관으로 나선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이렇게 시작해요. 남편은 추락했는가, 추락당했는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이…
- 「프로젝트 헤일메리」
협력은 인간의 일이 아니다 — 프로젝트 헤일메리
「프로젝트 헤일메리」(2026)는 한 가지를 묻는다. 협력은 정말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인간이 가장 못하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