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팝의 왕은 언제 죽었는가 — 마이클
「마이클」 (Michael) · 안톤 후쿠아 (Antoine Fuqua) · 2026
조카가 삼촌이 된다는 것
안톤 후쿠아는 흑인 액션 스타를 가장 잘 찍는 감독으로 불려왔다. 덴젤 워싱턴을 ‘트레이닝 데이’로 오스카에 올렸고, 동시에 그를 ‘이퀄라이저’ 시리즈의 노년 액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가 마이클 잭슨의 전기 영화를 맡았다. 주연은 자파 잭슨, 마이클의 조카이자 저메인 잭슨의 아들이다. 조카가 삼촌을 연기한다. 혈연이 분장을 대체하고, DNA가 연기 훈련을 보충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피를 나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재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한 재현은 또 무엇인가.
몸은 완벽하다, 서사는 절뚝거린다
자파 잭슨은 삼촌을 빼닮았다. 문워크를, 로봇 댄스를, 발끝 서기를 흠 없이 재현한다. 1983년 모타운 25주년 빌리진 무대를 그대로 옮기는 장면에서 스크린은 마치 강신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몸이 완벽할수록 서사는 절뚝거린다. 존 로건의 각본은 마이클 잭슨을 영원한 어린아이로 그린다. 장난감과 동물과 피터팬 그림책에 둘러싸인 성인. 여기서 영화는 의도치 않게 자기 목을 조른다. 성인 남성의 영원한 소년 콤플렉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가 나중에 어떤 아이들과 함께했는지, 영화는 단 한 번도 묻지 않는다. 회피(回避)가 전략이 되는 순간, 전기 영화는 홍보 영상이 된다.
아버지라는 유일한 악역
영화가 선택한 유일한 적대자는 아버지 조 잭슨이다. 콜먼 도밍고가 무거운 분장 아래에서 연기한 이 인물은 폭력적이고 탐욕적이다. 밤늦게까지 아들들을 리허설시키고, 벨트로 때린다. 영화는 조 잭슨을 마이클의 트라우마 전부로 환원한다. 1988년 배드 월드투어에서 영화가 끝나는 건 우연이 아니다. 1993년 첫 번째 아동 성학대 의혹이 터지기 5년 전. 영화는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자막을 띄우고 끝난다. 계속하되, 그 이야기의 절반은 생략한 채로.
침묵이 말하는 것들
나는 여기서 평론가의 한계를 고백해야 한다. 이 영화를 쓸 때, 나는 HBO 다큐멘터리 ‘리빙 네버랜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증언을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이미 공론장에 존재한다. 그런데 ‘마이클’은 그 공론장을 통째로 지워버린다. 지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발언이다. 영화가 침묵할 때, 침묵은 가장 큰 소음이 된다. 평론가로서 나는 영화 안에서만 말해야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 밖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역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다
이 영화의 결함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클 잭슨이라는 인물의 복잡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으려 애쓴 것들이 오히려 화면 바깥에서 더 선명해진다. 그것이 ‘마이클’의 역설적 공헌이다. 전기 영화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 자체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팝의 왕은 언제 죽었는가. 2009년 6월 심장마비로? 아니면 그가 처음 무대에 섰던 순간부터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던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