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전쟁을 하지 않는 전쟁 드라마 — 쇼군 (Shōgun)

「쇼군 (Shōgun)」 (Shōgun) · 레이첼 콘도, 저스틴 마크스 (Rachel Kondo, Justin Marks) · 2024

쇼군 (Shōgun) (2024) 이미지
「쇼군 (Shōgun)」 (2024) 이미지 © TMDb

「쇼군」 피날레를 처음 본 그날, SNS에 뭐라고 쓸까 한참 고민했다. 시즌 2 촬영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그 마지막 회를 떠올린다. 전쟁 드라마가 전쟁을 안 했다. 토라나가와 이시도의 대군은 결국 충돌하지 않았고, 승부는 한 통의 편지와 한 번의 자살로 갈렸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결국 아무것도 올리지 못했다. 뭔가를 쓰려면 먼저 내가 실망한 건지 감탄한 건지부터 정해야 하는데, 그 경계가 자꾸 흐릿해졌다.

FX의 열 화짜리 시대극 「쇼군」은 1600년 무렵 일본을 무대로 한다. 히로유키 사나다가 연기하는 토라나가 요시이는 천하를 노리는 다섯 다이묘 중 하나이고, 코스모 자비스의 블랙손은 난파해서 표류한 영국인 항해사다. 안나 사와이의 마리코는 통역관이자 기독교 신자이자 멸문한 가문의 생존자다. 이 셋 사이의 긴장과 동맹이 열 시간 동안 이어지면서 시청자는 봉건 일본의 정치 지형도를 함께 걷게 된다. 용도 없고 마법도 없지만, 누군가는 이 시리즈를 「왕좌의 게임」 이후 가장 몰입도 높은 TV 서사시라고 불렀다. 나도 동의한다. 다만 그 이유가 좀 다르다.

시리즈 내내 쌓인 갈등의 양(量)을 생각하면, 마지막에 전쟁이 터지는 건 장르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왕좌의 게임」도, 「로마」도, 「바이킹」도 결국 대규모 충돌로 화면을 채웠다. 그런데 「쇼군」은 그 약속을 파기한다. 클라이맥스는 다다미 한 장 위의 시선 교환과 한 차례의 시 낭송으로 구성된다. 칼을 뽑지 않은 자가 이긴다. 이게 도발이 아니면 뭘까. 시청자를 열 시간 동안 끌고 와서 기대한 폭발을 안 보여 주는 건 예의(禮儀)가 아니라 선언(宣言)이다.

그 선언의 내용은 이렇다. 전쟁은 필연이 아니다. 폭력의 카타르시스 없이도 정치적·정서적 해소는 가능하다. 마리코의 죽음은 잔혹함의 결과가 아니라 수만 명의 잠재적 사상자를 줄이기 위한 계산된 선택이고, 그 무게를 본인이 자발적으로 떠안았다. 시리즈가 중간중간 언급하는 ‘여덟 겹의 울타리’ 개념—감정을 가두는 장치—이 결국 여기서 터진다. 인물들이 그 울타리를 넘는 방식이 칼이 아니라 시(詩)라는 게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물론 대가는 있다. 블랙손과 마리코의 로맨스는 너무 압축되어 정서적 충격을 남기지 못했다. 1980년판이 역사와 멜로를 동등하게 떠받쳤다면, 이번 판본은 정치극으로서의 완성도를 택하고 사랑 이야기는 다소 야위었다. 나는 그게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움이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터지고 있고, 뉴스는 매일 폭발 장면을 전송한다. 드라마까지 그걸 복제할 필요가 있을까. 「쇼군」이 보여 준 건 ‘연결의 윤리’다. 승리가 아니라 연결, 영광이 아니라 평화. 이게 지금 가장 유효한 정치극의 자세라면, 나는 기꺼이 전쟁 없는 전쟁 드라마를 선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