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효율의 손가락, 칼질의 시대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Avengers: Infinity War) · 앤서니 루소, 조 루소 (Anthony Russo, Joe Russo) · 2018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2018) 이미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2018) 이미지 © TMDb

미국 《버라이어티》의 오언 글라이버먼은 타노스를 두고 “비극적 위엄(tragic grandeur)“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주 생명체 절반을 소멸시키겠다는 광기 어린 목표를 품은 보랏빛 괴물에게 ‘비극’이라니. 그러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수사가 과장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세요. 조시 브롤린이 연기한 이 디지털 거인은 캐릭터라기보다 하나의 논리에 가깝기 때문이에요.

타노스의 세계관은 단순하세요. 우주의 자원은 유한하고, 생명은 무한히 번식해요. 그러므로 절반을 없애면 나머지 절반이 풍요롭게 살아요. 손가락 한 번 튕기면 돼요. 협상도, 타협도, 설득도 필요 없어요. 그저 ‘칼질’ 한 번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요. 이 얼마나 깔끔한 해법인가요. 이 얼마나 효율적인 철학인가요. 그리고 이 얼마나 익숙한 논리인가요.

손가락 튕기는 사회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한국 사회를 떠올렸어요. 비용이 많으니 인력을 자르고, 수익이 안 나니 사업부를 자르고, 복잡하니 절차를 잘라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손가락 튕기듯 날려 버렸나요. 타노스가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구조조정 전문 컨설턴트가 되었을 거예요. 파워포인트 한 장에 “인원 50% 감축 → 수익성 개선”이라고 적어 넣고, 프레젠테이션 끝에 손가락을 튕겼겠죠.

영화 속 어벤져스들은 패배해요. 토르의 도끼도, 아이언맨의 나노슈트도,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도 손가락 한 번을 막지 못해요. 스파이더맨은 먼지가 되어 흩어지면서 “가기 싫어요”라고 울먹여요. 이 장면에서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십 대 소년이 아니라 구조조정 통보를 받은 중년 직장인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에요. 회사가 어렵다는 건 알아요, 그래도 가기 싫어요. 아이들이 있어요. 제발요.

패배의 역설

루소 형제는 열여덟 편의 마블 영화가 쌓아 온 것 위에서 과감한 도박을 벌여요. 영웅들이 지고, 악당이 이기는 결말.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이 충격적 엔딩에 “기업적 필연성의 별표가 붙는다”고 썼어요. 후속작이 예정되어 있고, 계약서가 서명되어 있으며, 프랜차이즈는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관객도 알아요.

그런데도 ‘인피니티 워’는 묘한 진심을 품고 있어요. 효율의 논리가 승리하는 세계, 칼질이 정답인 세계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똑똑히 보여줘요. 어벤져스의 처절한 패배는 역설적으로 질문을 던져요. 손가락 한 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대에, 당신은 튕기는 쪽인가요, 사라지는 쪽인가요. 결국 타노스의 승리는 그 자체로 패배의 증거예요. 절반을 없앤 세계는 풍요로워진 게 아니라 절반만 남았을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