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드라큘라, 애도(哀悼)의 형식으로 쓴 잔혹사

「드라큘라」 (Dracula) · 카린 쿠사마 (Karyn Kusama) · 2025

드라큘라 (2025) 이미지
「드라큘라」 (2025) 이미지 © TMDb

훼손된 제단 앞의 남자

영화 중반, 저주받은 블라드가 훼손된 제단 앞에 선다. 촛불이 꺼진 성당. 그는 더 이상 응답하지 않을 신에게 말을 건넨다. 목소리는 떨리고, 얼굴은 음영 속에 파묻혀 있다. 카린 쿠사마 감독의 ‘드라큘라’는 이 한 장면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분명히 선언한다. 이것은 공포영화가 아니다. 비극이다.

전쟁영화의 탈을 쓴 고딕 호러

《버라이어티》의 오웬 글라이버만은 이 작품을 “전쟁영화로 위장한 공포영화, 동맥의 피로 감싼 애도에 관한 명상”이라 정의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15세기 왈라키아의 풍경은 피터르 브뤼헐의 지옥도를 떠올리게 한다. 안개에 잠긴 숲, 촛불만이 비추는 석조 요새, 시체가 널린 전장. 촬영감독 줄리 커크우드는 인공조명을 최소화하고 자연광과 화염의 빛만으로 화면을 채운다. 화면은 질식할 듯 가깝다.

쿠사마는 ‘제니퍼스 바디’부터 ‘디스트로이어’까지, 의지와 무관하게 괴물이 된 존재가 남은 인간성과 대면하는 서사를 파고들어 왔다. ‘드라큘라’는 그 주제적 일관성의 연장선이자 동시에 가장 큰 캔버스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드라큘라를 면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7세기의 한 장면. 드라큘라는 자신이 지키지 못한 마을을 닮은 또 다른 마을을 체계적으로 파괴한다. 편집은 두 시간대를 교차시키며 병치한다.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악(惡)과 구별 불가능해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수세기를 건너는 육체

주연 배우의 연기는 장르 영화의 한계를 돌파한다. 애도하는 왕자에서 저주받은 불사의 존재로, 변화는 육체적 디테일로 먼저 드러난다. 후반부로 갈수록 움직임은 느려지고, 눈빛은 사냥꾼의 인내심을 띤다. 영화 말미, 적의 후손과 대면하는 장면에서 그는 클로즈업 하나로 5세기의 분노와 슬픔과 피로를 동시에 전달한다.

형식적 실험도 눈에 띈다. 시대 이동에 따라 화면 비율이 변한다. 15세기 장면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좁은 프레임. 세계가 조여 오는 느낌이다. 드라큘라의 권능이 커질수록 화면도 넓어져 결국 와이드스크린의 바로크적 공포 타블로에 도달한다.

그럼에도 남는 균열

아쉬운 지점은 있다. 신부의 죽음은 서사의 동력이 되지만, 그녀 자신은 인물이라기보다 상징에 가깝다. 중반부 이후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도 드라큘라의 심리적 여정에 주변적으로만 기능한다. 쿠사마의 전작들이 보여준 여성 인물의 입체성을 떠올리면 의외의 공백이다.

그럼에도 ‘드라큘라’는 스튜디오 공포영화가 예술적 야심을 품을 수 있다는 증거다. 피를 구경거리가 아닌 대가로 쓴다.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괴물됨을 자극이 아닌 비극으로 다룬다.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의 슬픔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