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포레스트 검프》는 할리우드가 만든 가장 교활한 보수 판타지다.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 로버트 저메키스 (Robert Zemeckis) · 1994
이 영화는 감동적인가? 그렇다.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 혁신적인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톰 행크스를 케네디, 존슨, 닉슨 곁에 디지털로 합성해 넣는 시퀀스는 1994년 기준으로 경이롭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직한가? 아니다.
《사이트 앤 사운드》의 리처드 코리스는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제니의 궤적을 보라. 반전 운동, 민권 운동, 페미니즘—그녀가 참여한 모든 정치적 실천은 약물 중독과 자기 파괴로 귀결된다. 반면 포레스트는 어떤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으며, 그저 “달리라”는 말에 달리고 “앉으라”는 말에 앉는다. 그 대가로 그는 전쟁 영웅이 되고, 새우 재벌이 되고, 아이까지 얻는다. 영화가 말하는 바는 명징(明徵)하다. 역사에 참여하지 마라. 역사는 너에게 일어나는 것이지 네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속는다. 앨런 실베스트리의 음악이 흐르고 깃털이 날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극장을 나서면 내가 무엇에 감동했는지 의심하게 된다. 게리 시니즈의 댄 중위만이 분노하고 질문하고 신에게 싸움을 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능동적 주체다. 그래서 그의 서사가 가장 복잡하고, 가장 인간적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미국이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선한 바보가 승리하고, 시끄러운 자들은 벌받는다는. 그런데 우리는 왜 그 이야기에 이토록 쉽게 울고 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