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부재의 언어 — 햄넷

「햄넷」 (Hamnet) · 클로이 자오 (Chloé Zhao) · 2025

햄넷 (2025) 이미지
「햄넷」 (2025) 이미지 ©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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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셰익스피어 전기물을 또 봐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솔직히 한숨부터 쉬었다. 깃펜 들고 고뇌하는 천재, 영감이 번쩍 내리꽂히는 극장, 엘리자베스 시대 복식의 향연. 이 공식을 몇 번이나 더 봐야 하나. 그런데 클로이 자오의 「햄넷」은 그 공식을 처음부터 거부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거의 말이 없고, 그 유명한 독백은 단 한 줄도 들리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허브 잎을 으깨는 손, 연기 자욱한 부엌, 빈 침대의 정적을 응시한다. 나는 또 속았다. 이번엔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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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오파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1596년, 열한 살에 페스트로 죽은 셰익스피어의 아들 햄넷의 이야기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아들의 이야기조차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어머니 아그네스의 영화다. 제시 버클리가 연기하는 아그네스는 역사가 ‘앤 해서웨이’라는 이름으로만 기록한 여자―천재의 아내라는 각주 속에 갇힌 인물―를 정면으로 복원한다. 그녀는 치료사이고, 약초학자이며, 자연과 교감하는 거의 신비로운 능력을 지녔다. 그 능력으로도 제 아이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비극이다.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얼리히는 이 영화를 “천재가 기억되기 위해 역사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시점으로 쓴 예술 탄생기”라고 불렀다. 정확하다. 폴 메스컬의 셰익스피어는 매력적이지만 근본적으로 ‘부재하는 아버지’다. 런던에서 영광을 좇느라 아들이 아플 때 곁에 없었던 남자. 영화는 「햄릿」이 그 죄책감과 상실에서 태어났음을 암시하지만, 창작 과정은 단 한 장면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은 마지막 20분, 아그네스가 글로브 극장에서 남편의 희곡을 처음 보는 장면에서 모든 것을 느끼게 된다. 사적 슬픔이 공적 예술로 전환되는 순간. 나는 이 장면에서 울었고, 그게 조작당한 감정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클로이 자오는 「노매드랜드」와 「더 라이더」에서 보여준 다큐멘터리적 느슨함 대신, 철저히 계산된 화면을 선택했다. 촬영감독 조슈아 제임스 리처즈와 함께 만든 이미지들은 베르메르 회화처럼 고요하고 치밀하다. 속도가 느리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사가 너무 적다고 불평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침묵(沉默)과 절제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을 겨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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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없는 아버지, 기록에서 지워진 어머니, 죽은 아이의 이름만 남은 희곡. 「햄넷」은 400년 전 이야기지만, 오늘의 질문과 꽤 가깝다. 누구의 서사가 기억되고, 누구의 서사가 각주로 밀려나는가. 예술이 탄생하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부재가 필요한가. 요즘 부고 기사마다 ‘헌신적인 아내’ ‘묵묵히 뒷바라지한 어머니’라는 문구가 등장할 때,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릴 것 같다. 각주는 언젠가 본문이 된다. 단, 누군가 카메라를 돌릴 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