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호그와트의 밀폐된 공기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 크리스 콜럼버스 (Chris Columbus)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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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백과사전을 통째로 영화화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ㄱ부터 ㅎ까지, 가나다순으로 세상 모든 항목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기획. 당연히 그런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질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을 담으려는 욕심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면서 그 유치한 상상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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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엘비스 미첼은 이 영화에서 “공기가 빠져나간 듯한(airless)” 느낌을 받았다고 썼다. 정확한 진단이다. 152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J.K. 롤링의 원작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을 성실하게 옮겨 담는다. 더즐리 가에 쏟아지는 편지들, 다이애건 앨리의 마법 상점들, 분류 모자 의식, 퀴디치 경기, 금지된 3층 복도.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듯 원작의 명장면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관객은 ‘아, 이 장면’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는 그 고개 끄덕임 외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점이다. 콜럼버스는 수백만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려는 데 온 신경을 쏟은 나머지 영화 자체의 호흡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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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영화가 무가치하다는 말은 아니다. 스튜어트 크레이그의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구현된 호그와트 성은 놀랍다. 움직이는 계단, 살아 숨 쉬는 초상화, 마법으로 반짝이는 천장. 영국 각지의 성당과 고성을 합성해 만들어낸 이 공간은 할리우드 자본만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영국적 무게감을 지닌다. 존 윌리엄스의 메인 테마는 첫 음절부터 귀에 각인되어 앞으로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할 청각적 상징이 될 것이다. 어린 배우들 중에서는 에마 왓슨의 헤르미온느가 단연 눈에 띈다. 또래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조급하게 손을 드는 그 영민한 소녀에게서 각본이 담지 못한 깊이가 언뜻 비친다. 앨런 릭먼의 스네이프 교수는 비열함 아래 묘한 우수를 깔고 있어 이후 이야기의 복선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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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문득 우리 사회의 어떤 풍경이 겹쳐 보였다. 모든 걸 빠짐없이 챙기려는 강박,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조바심, 그래서 결국 누구도 깊이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 원작을 사랑하는 팬들은 이 영화에서 기대한 것들을 확인하고 안심할 것이다. 하지만 안심과 감동은 다른 것이다. 콜럼버스의 영화는 마법을 보여주지만 마법을 부리지는 못한다. 반쯤 힘을 주고 시전한 주문처럼 뭔가 허전하다. 영화 속 덤블도어가 해리에게 건넨 말이 떠오른다.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느냐란다.” 콜럼버스는 모든 것을 선택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