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도망칠 곳이 없다 — 헌팅 시즌
「헌팅 시즌」 (Hunting Season) · 클라우디오 보이비안 (Claudio Boivian) · 2025
[1] 아르헨티나 황야다. 나무들 사이로 안개가 낮게 깔린다. 중년 남자가 딸에게 덫 놓는 법을 가르친다. 손놀림이 느리고 정확하다. 딸은 지루한 표정이다. 세상과 단절한 아버지, 세상이 궁금한 딸. 둘의 평화는 피 묻은 여자가 숲에서 기어 나오는 순간 산산이 부서진다. 클라우디오 보이비안 감독의 ‘헌팅 시즌’은 이렇게 시작한다.
[2] 《버라이어티》는 이 영화를 두고 “실용적 효과와 물리적 실재감을 선호해 CGI 범벅 작품들이 갖지 못한 무게감을 확보했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요즘 헐리우드 스릴러는 하나같이 과잉이다. 폭발은 너무 크고, 악당은 너무 많고, 주인공은 너무 안 죽는다. ‘헌팅 시즌’은 다르다. 총알은 귀하고, 상처는 아프고, 도망칠 곳은 없다. 아버지와 딸이 낯선 여자를 지키며 추격자들과 맞서는 구도는 낡았지만, 낡음 속에서 정직함이 빛난다. 공간을 읽는 감각이 좋다. 카메라는 숲과 오두막의 지형을 꼼꼼히 보여주고, 관객은 인물들이 어디로 뛰고 어디서 숨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이 명료함이 긴장을 만든다.
[3] 물론 빈틈은 있다. 악당들이 밋밋하다. 그들은 무언가를 되찾으러 왔고, 그게 전부다. 왜 저토록 집요한지, 조직의 내막은 무엇인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아버지-딸 관계의 섬세함이 있기에 버티지만, 적이 빈약하면 싸움의 의미도 가벼워진다. 그러나 나는 이 결핍이 오히려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프랜차이즈와 세계관 확장에 목매는 시대에, 이 영화는 속편 떡밥도 뿌리지 않고 한 이야기를 완결짓는다.
[4] 세상과 단절한 아버지. 세상이 침범해 들어온다. 지키려면 싸워야 한다. 이 단순한 구도가 자꾸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도 오두막에 틀어박혀 살고 싶은 심정 아닌가. 뉴스를 끄고, 알림을 지우고, 세상이 사라지길 바라며. 그러나 피 묻은 이방인은 끝내 문을 두드린다. 우리에겐 황야가 없다. 도망칠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