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인사이드 아웃 2': 불안은 적인가, 동지인가
「인사이드 아웃 2」 (Inside Out 2) · 켈시 만 (Kelsey Mann) · 2024
켈시 만 감독은 픽사 내부에서 10년을 준비했다. 스토리 수퍼바이저로 ‘몬스터 대학교’와 ‘굿 다이노’를 거치며 이 회사의 문법을 체득했다. 그가 첫 장편으로 전작의 속편을 택한 건 무모한 선택이었다. 2015년 피트 닥터가 만든 원작은 감정의 시각화라는 측면에서 이미 완결된 세계였다. 거기에 뭘 더 붙인다는 말인가.
픽사는 아직 살아 있는가? 답: 절반만
《버라이어티》의 피터 드브루지가 짚었듯, 이 영화는 ‘픽사가 절실히 승리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 도착했다. 최근 몇 년간 스트리밍 전용작들과 애매한 속편들로 명성에 먹칠을 해온 스튜디오다. ‘인사이드 아웃 2’는 그 긴 침체기에 대한 답변처럼 보인다. 하지만 완전한 부활이라고 부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영화가 좋다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좋다’의 기준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새로운 감정 캐릭터 중 ‘불안(Anxiety)‘만이 제 역할을 한다. 마야 호크의 목소리 연기는 초조함과 강박을 동시에 담아낸다. 불안은 라일리를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출발하지만, 그 보호 본능이 숨 막히는 억압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영화는 정교하게 추적한다. 반면 ‘부러움(Envy)‘과 ‘당황(Embarrassment)‘은 채 익지 않은 캐릭터다. ‘따분함(Ennui)‘이 소파에 누워 무심하게 조종간을 다루는 장면은 재미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
불안의 양면성(兩面性), 혹은 보호와 파괴 사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불안의 보호 본능이 공황 발작으로 폭주한다. 이 장면의 시각화는 놀랍도록 정확하다. 가슴이 조여오고, 시야가 좁아지고, 통제 불능의 공포가 밀려드는 순간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해낸다. 《인디와이어》의 비평가 데이비드 얼리히는 이 대목을 두고 ‘픽사의 감정 어휘가 왜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가졌는지 상기시키는 장면’이라 썼다.
문제는 이 통찰이 영화 전체를 견인하기엔 역부족(力不足)이라는 점이다. 기쁨(Joy)의 캐릭터 성장—긍정이 때로는 억압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은 가족영화치고 상당히 정교한 메시지다. 그러나 이 메시지가 충분히 숙성되기 전에 영화는 서둘러 해결로 내닫는다. 하키 캠프라는 외부 플롯은 내면의 드라마에 비해 허술하다.
사춘기(思春期)의 정신 건축물
영화에서 가장 효과적인 은유는 ‘자아감(Sense of Self)‘이다. 라일리의 핵심 신념들이 결정체 구조물로 형상화되어 있고, 불안의 개입으로 그것이 어둡게 변색되는 장면은 정체성 형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가시화한다. 어린 시절의 정신 건축물이 해체되는 과정은 성장의 혼란을 담아낸다. 다만 이 모든 새로운 설정들이 한 편의 영화 안에 과잉으로 들어차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픽사가 아직 살아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살아 있다, 하지만 예전만 못하다’이다. 이 영화를 쓰는 내 손가락도 사실 불안에 떨리고 있다. 위로받으려 극장에 갔다가, 되레 내 안의 불안만 또렷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