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착공식의 미학 — 모탈 컴뱃

「모탈 컴뱃」 (Mortal Kombat) · 사이먼 맥쿼이드 (Simon McQuoid) · 2021

모탈 컴뱃 (2021) 이미지
「모탈 컴뱃」 (2021) 이미지 © TMDb

1.

눈이 내린다. 17세기 일본, 대나무 숲 사이로 한 무사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카메라는 느긋하게 그 정경을 훑는다. 그리고 서리가 창문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찬 기운이 이상하다 싶은 순간, 푸른 갑옷의 사내가 나타나 순식간에 가족을 도륙한다. 피가 땅에 닿기 전에 얼어붙는다. 무사는 정원 도구로 맞서 싸우다 결국 쓰러진다. 사이먼 맥쿼이드 감독의 ‘모탈 컴뱃’은 이 10여 분의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촬영은 장중하고, 편집은 절제되어 있으며, 히로유키 사나다와 조 타슬림이 빚어내는 증오의 밀도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시대극을 연상시킬 정도다.

2.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얼리치는 이 오프닝을 두고 “잠시 비디오게임 원작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고 썼다. 그의 평가는 정확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현대 미국으로 무대가 옮겨지는 순간, 영화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루이스 탄이 연기하는 신규 캐릭터 ‘콜 영’은 MMA 선수 출신의 ‘선택받은 자’인데, 그가 하는 일이라곤 주변 인물들로부터 ‘세계관 설명’을 듣는 것뿐이다. 아웃월드, 어스렐름, 아르카나, 예언, 토너먼트. 등장인물들은 대화하는 대신 위키피디아를 낭독한다. 조쉬 로슨이 연기하는 카노만이 이 진지함의 허위(虛僞)와 황당(荒唐)을 알아채고 혼자서 코미디를 시전하지만, 그마저도 반복되면 소음이 된다. 쿵라오가 면도날 모자로 적을 양분하고, 잭스의 금속 팔이 두개골을 으깨는 장면들은 팬들에게 짜릿한 서비스겠으나,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훈련 몽타주와 각성 시퀀스는 의무 이행의 지루함 그 자체다.

3.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내내 한국의 착공식을 떠올렸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삽을 들고 찍는 그 사진 말이다. 화환은 풍성하고, 현수막에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미래 비전’이 적혀 있다. 문제는 완공이다. 착공식은 언론에 나오지만, 공사 지연과 예산 초과는 지면 구석에 묻힌다. ‘모탈 컴뱃’이 정확히 그렇다. 영화는 결말 대신 속편의 약속을 내민다. 스콜피온과 서브제로의 숙명적 대결은 다음 편으로 미뤄지고, 콜 영은 다음 시리즈의 주인공 자리를 예약해둔 채 영화가 끝난다. 프랜차이즈 셋업이라는 명목 아래 완결된 서사는 포기된다. 《버라이어티》는 이를 “IP 유지보수”라 불렀다. 나는 ‘보여주기 행정’이라 부르겠다. 우리는 이런 것에 익숙하다. 공약은 화려하고, 실행은 미정이며, 책임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간다. 정치인들은 “다음에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영화는 “속편에서 만나요”라고 말한다. 둘 다 현재의 관객을 홀대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기만이다.

4.

물론 나 역시 착공식을 연다. 이 칼럼을 쓰는 행위 자체가 그렇다. 거창한 문제의식을 제기해놓고 결론은 흐지부지.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척하다가 정작 대안은 없다. 다만 나는 적어도 속편을 예고하진 않겠다. ‘모탈 컴뱃’은 오프닝 10분 동안 진짜 영화가 될 뻔했다. 히로유키 사나다의 눈빛에는 복수와 상실이 공존했고, 조 타슬림의 서늘함에는 악역 이상의 깊이가 있었다. 그것만으로 입장료 값은 한다고, 내가 관대해지려는 순간 영화는 엑스포지션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이 영화가 남긴 것은 사나다가 내뱉는 단 한 마디다. “복수는 피 속에 흐른다(Vengeance runs in the blood).” 그렇다. 복수는 피 속에 흐르고, 기대는 실망 속에 흐르며, 프랜차이즈의 약속은 관객의 지갑 속에 흐른다. 다음 편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나는 기다리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