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오펜하이머: 시간의 건축가가 설계한 청문회

「오펜하이머」 (Oppenheimer) ·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 · 2023

오펜하이머 (2023) 이미지
「오펜하이머」 (2023) 이미지 © TMDb

시간의 건축가가 설계한 청문회

놀란은 줄곧 시간의 구조에 집착해왔다. 〈메멘토〉의 역행, 〈인터스텔라〉의 상대성, 〈테넷〉의 역전. 이번에 그 기술이 향한 곳은 1954년의 보안 청문회장이다. 영화는 컬러와 흑백을 교차하며 두 시간대를 오간다. 하나는 오펜하이머의 심판, 다른 하나는 그를 심판한 루이스 스트로스의 심판. 이 이중 구조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다. 《버라이어티》의 오웬 글라이버만은 이를 “결정과 배신, 합리화의 연쇄반응”이라 불렀는데, 적확한 표현이다. 핵분열처럼, 한 번 시작된 사건은 멈추지 않는다.

킬리언 머피의 얼굴이 IMAX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천재天才의 자부가 공포로 바뀌는 순간을 목격한다. “지금 나는 죽음이 되었고,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유명한 대사는 과잉 연출 대신 절제로 처리된다. 오히려 더 무섭다.

트리니티, 또는 침묵의 문법

핵실험 시퀀스는 CGI 없이 촬영됐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충격적인 것은 폭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직전의 침묵이다. 빛이 먼저 오고, 소리는 한참 뒤에 온다. 그 간극 동안 관객은 이론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견뎌야 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스트로스는 영화의 숨은 엔진이다. 상처받은 허영과 복수심. 역사를 움직이는 건 종종 대의大義가 아니라 사소한 원한이라는 사실을 그는 증명한다. 솔직히 나는 3시간짜리 청문회 영화라는 말에 각오를 단단히 했다. 실제로는 숨 쉴 틈이 없었다.

파멸 이후의 세계

영화는 일본의 피해자들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오펜하이머의 제한된 시점을 반영한 선택인지, 윤리적 회피인지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 부재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그게 영화가 의도한 바일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그가 열어젖힌 시대에 살고 있다. AI가 예측 불가능한 힘으로 성장하는 지금, “만들 수 있지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점점 더 자주 돌아온다. 80년이 지났는데도 대답은 여전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