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포인트 슈즈에 묻은 피, 또는 신체의 문법 — 프리티 리썰
「프리티 리썰」 (Pretty Lethal) · 알렉스 그라시아 (Alex Garcia) · 2026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석양이 길게 늘어진다. 버스 안, 젊은 여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지쳐 있다. 누군가는 다리를 쭉 뻗어 스트레칭하고, 누군가는 헤드폰 너머의 음악에 빠져 있으며, 누군가는 옆자리 동료와 낮은 목소리로 험담을 주고받는다. 발목에 감긴 테이프, 젖은 레오타드 위로 덧입은 후드티, 트렁크 가득 쌓인 토슈즈 가방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순회 공연단의 일상이다. 그러다 버스가 멈춘다. 엔진이 꺼지고, 핸드폰 신호도 끊기고, 길 끝에 낡은 여관 하나가 희미하게 보인다.
전투를 위해 훈련된 신체
『버라이어티』의 오언 글라이버먼은 이 영화의 전제를 두고 “발레 신체는 이미 극단을 위해 훈련된 것”이라고 썼다. 정확한 지적이다. 알렉스 그라시아 감독의 ‘프리티 리썰’은 그 단순한 사실을 영화의 핵심 문법으로 삼는다. 발레리나들이 외진 여관에서 가면 쓴 공격자들과 맞서 싸운다는 줄거리는 B급 호러의 전형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른 점은 그 전제를 농담이 아니라 논리로 대한다는 데 있다.
발레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아라베스크 자세를 유지하려면 얼마나 큰 힘이 필요한지, 그랑 주테의 도약에 얼마나 폭발적인 에너지가 실리는지. 안무가 벤자민 밀레피에와 스턴트 코디네이터 하이디 머니메이커가 설계한 액션 장면들은 이 사실을 정면으로 활용한다. 주인공 미라(젠나 오르테가)가 ‘백조의 호수’ 흑조 변주에서 따온 동작으로 공격자를 제압하는 시퀀스는 기괴하면서도 이상하게 감동적이다. 춤이 무기가 되고, 아름다움이 생존의 도구가 된다.
복도의 지리학
영화의 중반부, 여관의 비좁은 복도와 먼지 쌓인 연회장에서 벌어지는 추격 시퀀스가 ‘프리티 리썰’의 진가를 드러낸다. 그라시아 감독은 공간을 명확하게 파악시키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는다. 촬영감독 나타샤 브라이어의 카메라는 좁은 통로에서 무용수들의 회전과 도약을 따라가며 그들의 움직임이 생존 전략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공연장에서 무대 동선을 익히듯, 이 여자들은 건물의 구조를 읽고 협력한다.
여기서 영화는 흥미로운 전복을 이룬다. 발레단이라는 집단은 원래 경쟁과 위계로 점철된 곳이다. 영화 초반 버스 안에서 암시되는 암투와 질시가 위기 상황에서 협력으로 바뀌는 과정은 장르 관습을 따르면서도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 물론 일부 조연들은 희생양으로만 존재하고, 여관 주인들의 정체에 대한 3막의 반전은 무리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자기 한계를 아는 작품이다. 깊은 의미를 찾으려 하기보다 장르의 쾌감에 충실하려 한다.
진지함의 미덕
내가 이 영화를 좋게 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프리티 리썰’은 자기 전제를 조롱하지 않는다. 요즘 장르 영화들 중에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윙크를 보내며 “이거 웃기지 않아요?”라고 묻는 작품들이 너무 많다. 이 영화는 그러지 않는다. 폭력은 잔인하고, 공포는 실제적이며, 마지막 대결—불타는 연습실에서 벌어지는—은 처참한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젠나 오르테가는 또 한 번 왜 그녀가 이 세대의 대표적 공포영화 배우인지를 증명한다. 취약함과 결기를 동시에 보여주는 연기는 영화에 무게중심을 제공한다. 발레단의 부상당한 수석 무용수를 연기한 이사벨라 페레이라의 존재감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이 영화가 예술가 착취의 역사라는 주제를 제대로 파고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영화가 되려 한 것이 아니다. ‘프리티 리썰’은 B급의 전제를 A급의 신념으로 실행한다. 마지막 장면, 피 묻은 포인트 슈즈가 화면을 채우는 이미지가 오래 남는다. 아름다움은 폭력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