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세크리터리
「세크리터리」 (Secretary) · 스티븐 셰인버그 (Steven Shainberg) · 2002
1.
BDSM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망하게 되어 있다. 선정성에 기대 마케팅을 하거나, 진지한 척 병리학 강의를 늘어놓거나. 둘 중 하나로 빠진다. 《뉴욕타임스》의 A.O. 스콧은 스티븐 셰인버그의 <세크리터리>를 “진정으로 도발적이면서 무장해제할 만큼 달콤한” 영화라고 썼다. 도발과 달콤함이 공존하는 영화. 나는 그게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2.
메리 게이츠킬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단순한 전략을 쓴다. 병리화하지 않는다. 매기 길렌홀이 연기하는 리 홀로웨이는 정신병원에서 갓 퇴원한 여성이다. 팔에는 자해의 흔적이 있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제임스 스페이더가 연기하는 변호사 E. 에드워드 그레이는 비정상적으로 꼼꼼하고 집요한 상사다. 타자 오류 하나에 빨간 펜을 들고, 점점 특정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둘의 관계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제목이 힌트다. 중요한 건 영화가 이 관계를 치료 대상이나 트라우마의 연장선이 아닌 선택으로 그린다는 것이다. 동의에 기반한 권력 교환. 그것이 기존의 어떤 로맨스보다 진정성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밀어붙인다.
3.
매기 길렌홀의 연기가 이 영화를 살린다. 수동적 피해자로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여성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직시하고,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것을 쫓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해방을 찾는다. 복종이 힘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연기. 제임스 스페이더는 그의 시그니처인 통제된 강렬함을 가져오되, 그 아래 두려움과 수치심이 꿈틀대는 남자를 연기한다. 겉으로는 지배하지만 실은 자기 감정을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 둘의 케미는 에로틱하면서 동시에 슬프다. 셰인버그 감독은 시각적으로도 이 궤적을 추적한다. 정신병원의 제도적 회색에서 시작해 리가 자신을 찾아갈수록 화면에 온기가 돈다. 색채가 캐릭터 아크를 따라간다.
4.
마지막 농성 장면은 약간 무리가 있다. 알레고리로 치고 들어가는데 서사적 믿음이 따라오지 못한다. 하지만 감정적 진실이 그 빈틈을 채운다. 21세기 초에 여성의 욕망과 주체성을 이 정도로 정면 돌파한 할리우드 영화가 몇이나 될까. 소위 진보적이라는 서사들보다 이 영화가 더 정직하게 여성 캐릭터를 다룬다는 건 아이러니다. 나는 이 영화를 너무 늦게 봤다. BDSM 소재의 영화는 대충 다 그저 그렇다고 치부한 채 20년을 흘려보냈다. 내 편견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일은 언제나 유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