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전과서의 완성 — 매트릭스

「매트릭스」 (The Matrix) · 라나 워쇼스키 & 릴리 워쇼스키 (Lana Wachowski & Lilly Wachowski) · 1999

매트릭스 (1999) 이미지
「매트릭스」 (1999) 이미지 ©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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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봄, 나는 극장에서 캐리앤 모스가 벽을 타고 뛰는 장면을 보았다. 그 순간 물리학 교과서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릿타임이라 불리게 될 그 기법 앞에서 시간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정지된 육체 주위를 유영하는 동안 관객들은 숨을 참았다. 워쇼스키 형제가 만들어낸 이 효과는 액션 촬영의 문법 자체를 일거에 구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사이트 앤 사운드》의 킴 뉴먼은 이 영화를 “사이버펑크 트로프들의 베스트 앨범”이라 불렀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그 표현은 영화의 절반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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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는 윌리엄 깁슨의 소설에서 개념을,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에서 이미지를, 홍콩 무협에서 신체의 문법을 빌려왔다. 보드리야르와 데카르트의 이름이 스크립트 곳곳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은 1980년대 사이버펑크 운동이 꿈꾸던 것들이고, SF 독자들에게는 낡은 뉴스였다. 그러나 워쇼스키 형제는 낡은 뉴스를 두 번째 파도로 탔다. 퍼스널 컴퓨터가 일상에 침투하고 디지털 특수효과가 충분히 성숙한 90년대 말, 그들은 문학 속에 갇혀 있던 개념들을 시각화할 도구를 손에 쥐고 있었다. 타이밍의 승리다. 키아누 리브스의 멍한 표정은 관객이 이 세계에 입문하는 통로가 되었고, 로렌스 피시번의 중후함은 허무맹랑한 설정에 무게를 부여했다. 휴고 위빙의 에이전트 스미스는 인류에 대한 혐오를 거의 희열에 가깝게 연기했다. 녹색 빛이 감도는 매트릭스 내부와 따뜻한 황갈색의 네뷰커드네저호가 대비되는 색채 설계는, 스타일이 곧 주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윤화평의 와이어 액션과 존 게이타의 시각효과가 결합된 전투 시퀀스들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었다. 네오가 코드를 읽기 시작하는 순간, 불릿타임은 그의 인식 변화를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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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기능은 다른 곳에 있다. 《매트릭스》는 SF 장르가 수십 년간 축적한 사유들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전과서다. 장르 독자들이 이미 교통정리를 끝낸 인식론 게임, 메시아 서사, 가상현실의 존재론이 깔끔하게 포장되어 할리우드 관객 앞에 배달되었다. 복제양 돌리가 등장했을 때 매스컴이 “신의 섭리를 위반한다”고 외쳤던 것을 기억하는가. SF는 그런 질문들을 진작에 끝냈지만, 그 결론은 팬덤 안에 갇혀 있었다. 《매트릭스》는 그 갇힌 문을 열었다. 이 영화가 철학적으로 독창적이냐는 질문은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다. 장르의 전과서가 독창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명쾌하게 요약하고 스타일 있게 전달하면 된다. 워쇼스키 형제는 그 임무를 완수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성공에 도취된 창작자들이 자신의 영화가 실제로는 얼마나 가볍고 경박한지 잊어버릴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