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미완이기에 완성된 영화 — 듄
「듄」 (Dune) · 드니 빌뇌브 (Denis Villeneuve) · 2021
회색 바다가 절벽 아래서 출렁인다. 폴 아트레이데스가 고향 행성 칼라단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 그는 아직 사막을 모른다. 예언이 자기 삶을 집어삼킬 줄 모른다. 멀리서 파도 소리만 들린다. 드니 빌뇌브의 《듄》은 이 정적의 순간에서 시작한다. 움직임이 아니라 침묵으로, 액션이 아니라 대기의 무게로. 《버라이어티》의 오웬 글라이버먼은 이 영화를 “모래와 빛과 침묵으로 조각된” 작품이라 불렀다. 정확한 진단이다. 빌뇌브가 만든 것은 스펙터클이 아니라 스펙터클을 향한 긴 호흡의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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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아라키스에 도착하면 스케일이 바뀐다. 촬영 감독 그레이그 프레이저가 요르단과 아부다비에서 포착한 이미지들은 배경이 아니라 존재다. 모래언덕의 능선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빛이 입자처럼 공기 속에 부유한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반주가 아니라 기후다. 원초적인 합창과 전자음의 충돌이 스크린을 넘어 밀려온다. 샌드웜이 모래 아래서 솟구치는 장면에 이르면, 수십 년간 실패했던 영상화 시도들의 무덤 위에 기념비가 세워진다.
그러나 이 장엄함에는 대가가 있다. 2시간 반 동안 영화는 프랭크 허버트 원작의 절반만 다룬다. 젠데이아의 차니는 예고편보다 본편 등장 시간이 짧다. 티모시 샬라메의 폴은 억눌린 감정 속에서 묵직하게 움직이지만, 그 내면은 풍경의 웅장함에 묻힌다. 빌뇌브는 세계 구축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 안에 사는 인간들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레베카 퍼거슨의 레이디 제시카, 오스카 아이작의 레토 공작이 아무리 좋은 연기를 보여줘도 카메라는 그들보다 모래를 더 오래 응시한다. 월드빌딩의 밀도가 감정의 밀도를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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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이 있다. 《듄》은 미완이기 때문에 성공했다. 끝맺지 않았기에 끝없이 기다리게 만든다. 공식과 팬서비스가 지배하는 프랜차이즈 시대에 빌뇌브는 관객에게 인내를 요구했고, 그 요구 자체가 하나의 선언이 되었다. 영화가 중단처럼 끊기는 지점에서 우리는 완결되지 않은 무언가에 오히려 더 강하게 묶인다. 완성하지 않음으로써 완성한 영화. 도착하지 않음으로써 예언을 성취한 메시아. 허버트가 그린 세계의 기이함을 빌뇌브는 거의 지워버렸지만, 미완의 형식만은 우연히 원작의 핵심과 닿아 있다. 구원은 영원히 유예될 때 가장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