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무한 접속의 고독, 네온 아래 쪼그라드는 영혼들 — 유포리아

「유포리아」 (Euphoria) · 샘 레빈슨 (Sam Levinson) · 2019

유포리아 (2019) 이미지
「유포리아」 (2019) 이미지 © TMDb
  1. 화면이 번진다. 어린 소녀가 알약을 삼키고, 세상이 처음으로 조용해진다. HBO 드라마 ‘유포리아’의 주인공 루(젠데이아)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으로 평화를 찾았다.” 중독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의식이 견딜 수 없을 때 왜 무의식을 선택하는지, 그 절박한 심리를 해부하는 첫 장면이다.

  2. 샘 레빈슨이 창작하고 연출한 이 시리즈는 미국 Z세대의 초상이다. 《가디언》의 루시 매건은 “극단이 예외가 아니라 일상인 세대”라고 썼다. 인터넷과 함께 자란다는 것은 모든 것에 항시 접속된다는 뜻이고, 드라마는 그 과포화(過飽和)를 형식 자체로 재현한다. 촬영감독 마르셀 레브의 카메라는 교외의 평범한 골목을 몽환적 꿈의 풍경으로 바꿔놓고, 편집은 디지털 세대의 파편화된 주의력을 모방한다. 과잉(過剩)과 결핍(缺乏)이 공존하는 청춘. 그 내면의 혼돈이 글리터와 네온 조명으로 피부 위에 번진다.

  3. 비판은 당연히 따른다. 노골적 성애, 마약 묘사, 폭력이 서사에 필수인가, 아니면 자극을 위한 자극인가. 그러나 이 드라마의 핵심은 자극 자체가 아니라 ‘연결’의 역설이다. 무한 접속 시대에 고립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깊어졌다. 루와 줄스(헌터 셰이퍼)의 관계가 이를 증명한다. 범주로 규정되지 않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조차 구원이 되지 못하는 순간들. 한국의 10대도 다르지 않다. 단톡방에 24시간 묶여 있으면서 외롭고, SNS에 ‘좋아요’가 쌓이는데 공허하다. ‘유포리아’가 미국 드라마임에도 낯설지 않은 이유다.

  4. 드라마는 묻는다. 왜 이 아이들은 파괴를 향해 질주하는가. 그 답을 사회는 외면한다. 청소년 정신건강 예산은 늘 후순위고, 교실은 입시 공장이다. 어른들은 “요즘 애들은 왜 저러냐”며 혀를 찬다. 혀만 차면 되니까 편하다. 나 역시 그 편한 어른 중 하나다.

차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