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트렁크 속 괴성, 그리고 우리 — 좋은 친구들
「좋은 친구들」 (GoodFellas) · 마틴 스코세이지 (Martin Scorsese) · 1990
깜빡이는 하이웨이 가로등
한밤의 고속도로. 차 트렁크에서 둔탁한 쿵쿵 소리가 새어나온다. 세 남자가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자, 피투성이 사내가 손을 뻗는다. 칼이 내리꽂히고, 총성이 울린다. 화면이 정지되며 내레이션이 흐른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난 늘 갱스터가 되고 싶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좋은 친구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소속과 존경의 마약
《사이트 앤 사운드》의 리처드 코리스는 이 영화를 “미국 지하세계로의 완전 침수 세례”라 불렀다. 정확하다. 스코세이지는 폭력이 아니라 ‘소속감’을 판다. 브루클린 빈민가 소년 헨리 힐에게 동네 양아치들은 신(神)이었다. 학교 가지 않아도 되고, 줄 서지 않아도 되고, 경찰이 고개를 숙인다. 코파카바나 뒷문을 통과해 VIP석에 앉기까지의 그 유명한 3분짜리 롱테이크는 유혹 그 자체다. 여자친구 캐런만 홀린 게 아니다. 관객도 함께 빨려 들어간다.
조 페시가 연기한 토미 드비토의 “뭐가 웃겨?(Funny how?)” 장면은 환대(歡待)와 살의(殺意)가 0.5초 만에 뒤집히는 공포의 교과서다. 웃음과 비명 사이에 칸막이 따윈 없다.
평범한 ‘아무도 아닌 놈’
1 결국 헨리는 증인보호프로그램에 들어가 교외의 단독주택에서 계란 프라이를 먹는 ‘보통 사람’이 된다. 2 그는 한탄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규칙을 무시하고, 존경받고, ‘한 통속’이 되는 삶의 달콤함을. 3 그 달콤함이 왜 문제인지도 안다. 4 그런데 왜 매번 그 유혹에 굴복하는 정치인과 재벌 뉴스에 분노하다가도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슬쩍 상상하게 되는 걸까.
우리는 왜 트렁크 속 비명보다 코파카바나 뒷문의 화려함을 더 오래 기억할까. 솔직히 이 칼럼을 쓰는 나조차 그 롱테이크를 열 번은 돌려봤다.
헨리 힐은 영화 끝에서 이렇게 말한다. “난 이제 그냥 평범한 아무도 아닌 놈이야.” 가장 무서운 건, 그 문장이 형벌처럼 들린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