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돌이킬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Irréversible) · 가스파 노에 (Gaspar Noé) · 2002

돌이킬 수 없는 (2002) 이미지
「돌이킬 수 없는」 (2002) 이미지 © TMDb

1. 어떤 영화는 끝나고 나서 좋았는지 나빴는지 판단할 수 없다.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이 그렇다. 이 영화를 좋다고 말하면 취향을 의심받고, 나쁘다고 말하면 이해력을 의심받는다. 그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2. 영화는 끝에서 시작한다. 소화기로 두개골이 박살나는 장면이 먼저 나오고, 그 복수의 원인이 된 9분간의 강간이 뒤따르며, 마지막으로 햇살 가득한 공원에서 책 읽는 여자가 나온다. 역순 서사는 크리스토퍼 놀란도 썼지만, 노에의 목적은 퍼즐 맞추기가 아니다. 《뉴욕 타임스》의 A.O. 스콧은 프랑스어 원제가 ‘돌이킬 수 없는’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것’에 가깝다고 짚었다. 그 구분이 중요하다. 이미 벌어진 일을 알면서 행복한 장면을 보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주는 고통의 정체다.

3. 논쟁의 핵심은 강간 장면이다. 고정 카메라, 편집 없음, 9분. 노에는 관객에게 피할 권리를 주지 않는다. 이것이 정직함인가 가학인가. 답은 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고,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을 시험한다. 모니카 벨루치의 헌신적 연기는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그 헌신이 영화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도발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때만 가치가 있다. 노에가 그 선을 지켰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4. 결국 이 영화 앞에서 나는 판정을 보류한다. 판정을 보류한다는 것은 평론가로서 무능을 자인하는 일이지만, 때로 무능의 고백이 거짓 확신보다 정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