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면도날을 캡 챙에 꿰어 넣은 자들 — 피키 블라인더스

「피키 블라인더스」 (Peaky Blinders) · 스티븐 나이트 (Steven Knight) - 크리에이터 · 2013

피키 블라인더스 (2013) 이미지
「피키 블라인더스」 (2013) 이미지 © TMDb

1.

지난주 버밍엄 출장길에 오래된 펍에 들렀다. 벽에 1920년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석탄 분진이 뿌옇게 앉은 거리, 납작모를 깊이 눌러쓴 남자들. 그 사진 아래 작은 팻말이 있었다. “피키 블라인더스가 이 동네를 지배했다.” 나는 맥주잔을 내려놓고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전쟁에서 돌아온 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를 점거했던 시절. 스티븐 나이트가 그린 것이 바로 그 시절이다.

2.

버라이어티의 브라이언 로우리는 킬리언 머피의 연기를 “절제된 강렬함의 마스터클래스(masterclass in controlled intensity)“라고 썼다. 틀린 말이 아니다. 토미 셸비를 연기하는 머피는 참호에서 무언가를 보고 온 남자의 눈을 하고 있다. 그 눈이 말을 대신한다. 분노도, 야망도, 트라우마도 전부 그 창백한 눈동자 안에 담겨 있다.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스며든다. 헬렌 맥크로리의 폴리 이모가 이 가문의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하고, 샘 닐의 캠벨 경감이 적대자로 균형을 잡는다. 앙상블이 견고하다.

3.

이 드라마가 시청자를 갈라놓는 지점은 미학(美學)에 있다. 감독 오토 바서스트는 1920년대 버밍엄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해체한다. 화면에는 언제나 연기가 떠 있고, 공장 굴뚝이 고딕 성당처럼 솟아 있으며, 그 위로 닉 케이브와 아틱 몽키스의 음악이 흐른다. 시대극치고 경박(輕薄)하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본다. 과거를 유물처럼 전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역사란 우리가 지금 보는 방식으로만 볼 수 있다는 태도다. 내가 버밍엄 펍에서 그 사진을 봤을 때 떠올린 것도 영화 속 장면이었지, 교과서 삽화가 아니었다.

4.

이 드라마에 대해 글을 쓰면서 나 역시 스타일에 현혹(眩惑)되고 있는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양식이 내용을 삼킨 작품이라면 이토록 오래 회자되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 만든 괴물들이 고향 골목을 장악하는 서사, 노동계급 청년이 제국의 주변부에서 스스로 왕국을 세우는 이야기. 그것이 영국만의 이야기일까. 당신이 살아가는 도시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면도날을 품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이 드라마는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