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세븐',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세븐」 (Se7en) · 데이비드 핀처 (David Fincher) · 1995
[1] 영국 《사이트 앤 사운드》의 에이미 타우빈은 이 영화의 결말을 두고 “관객을 폭력의 공범으로 만든다”고 썼다. 맞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은 두 시간 동안 우리를 범죄 현장으로 끌고 다니더니, 마지막엔 손에 피를 묻힌 채 극장 밖으로 내보낸다. 우리가 입장료를 내고 이 참혹을 구경하러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듯이.
[2] 일곱 가지 대죄(大罪)를 테마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인. 은퇴를 앞둔 노형사 서머셋(모건 프리먼)과 혈기 왕성한 신참 밀스(브래드 피트)가 그를 쫓는다. 여기까진 익숙하다. 그러나 핀처는 장르의 문법을 철저히 배반한다. 이름 없는 도시엔 햇빛이 들지 않고, 끝없는 비가 거리를 적신다.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가 빚어낸 이 음습한 화면은 도시 자체가 썩어가는 육체임을 암시한다. 범인을 잡아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처음부터 스민다.
[3] 결말은 악명 높다. 정의(正義)와 응징(應懲)이란 할리우드적 공식을 핀처는 냉정하게 거부한다. 범인이 승리하는가, 형사가 승리하는가? 그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지점까지 영화는 관객을 몰아붙인다. 누군가는 허무주의라 하고, 누군가는 용기라 한다. 분명한 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안전한 거리두기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4] 우리 사회에도 ‘세븐’의 범인처럼 대의(大義)를 내세워 심판자를 자처하는 자들이 있다. 정치적 신념이든, 도덕적 우월감이든, 그들은 타인을 단죄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핀처는 묻는다. 악을 응시하는 자는 과연 악과 무관한가? 분노에 휩쓸린 심판은 또 다른 죄악이 아닌가?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거울 속 우리 얼굴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