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던전의 아이들, 그리고 우리의 잃어버린 지하실 — 기묘한 이야기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 더퍼 브라더스 (The Duffer Brothers) · 2016

기묘한 이야기 (2016) 이미지
「기묘한 이야기」 (2016) 이미지 ©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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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인디애나 주, 어느 교외 주택의 지하실. 형광등 불빛 아래 네 명의 소년이 던전스 앤 드래곤스 보드판을 둘러싸고 앉아 있다. 주사위가 탁자 위를 굴러간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이제 그만 올라와”라고 외치고, 소년들은 자전거를 타고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그중 한 명이 집에 도착하지 못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지하실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이것이 1980년대에 대한 단순한 추모식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버라이어티》의 모린 라이언이 “노스탤지어를 다루되 페이스티시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썼을 때, 그녀는 정확히 무엇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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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 브라더스가 만든 이 시리즈의 핵심은 아이들을 진지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두려움을, 우정을, 비밀을. 스필버그와 스티븐 킹이 1980년대에 성공한 이유도 같았다. 괴물이 무서운 게 아니라 괴물 앞에 선 아이들의 표정이 무서웠다. 위노나 라이더는 실종된 아들을 찾는 어머니 조이스 바이어스 역에서 허스테리와 신념 사이 어딘가를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크리스마스 조명등으로 죽은 아들과 교신하려는 여자—자칫하면 개그가 될 수 있는 장면을 그녀는 처절한 모성으로 채운다. 밀리 바비 브라운의 일레븐은 대사가 거의 없다. 삭발한 머리, 코피, 눈빛. 그것만으로 이 어린 배우는 시즌 전체를 지탱한다. 나는 솔직히 저 나이에 저런 눈을 가진 배우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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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시리즈가 참조의 과잉에 빠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티’의 자전거, ‘구니스’의 소년들, ‘엘름가의 악몽’의 공포, ‘스탠 바이 미’의 우정—더퍼 브라더스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너무 많이 보여주려 한다. 《가디언》의 스튜어트 헤리티지는 “80년대 노스탤지어가 너무 짙어서 아쿠아넷(80년대 헤어스프레이) 냄새가 날 지경”이라고 비꼬았는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참조의 범람이 거슬리지 않는다. 왜일까. 아마도 그들이 참조하는 것이 소품이나 미장센이 아니라 ‘감정의 문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가 어른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 괴물과 싸워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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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1980년대 복고가 유행이다. 그러나 우리의 복고는 무엇을 복원하려는가. 교련 시간에 삐걱대던 M1 소총인가, 야간 통행금지 해제 직후의 해방감인가, 아니면 국풍81의 그 기묘한 열광인가. 우리에게 1980년대는 스필버그의 그것과 다르다. 광주가 있고, 고문이 있고, 금지곡이 있다. ‘기묘한 이야기’의 아이들은 ‘뒤집힌 세계(Upside Down)‘라는 평행차원의 괴물과 싸우지만, 한국의 1980년대 아이들은 이쪽 세계의 괴물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 괴물들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지하실에 모여 던전스 앤 드래곤스를 하던 미국의 아이들과 달리, 같은 시대 한국의 아이들은 독서실에 갇혀 있었다. 모험은 없었고, 괴물은 교실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

그러니 이 시리즈를 보며 느끼는 향수는 복잡하다. 우리에게 없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빼앗긴 지하실에 대한 그리움.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자전거와 친구들이 있었다면, 이라는 가정법 과거. ‘기묘한 이야기’가 진짜 기묘한 것은 괴물 때문이 아니다. 저런 어린 시절이 어딘가에는 존재했다는 사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