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슈퍼맨이 사이코패스라면 — 더 보이즈
「더 보이즈」 (The Boys) · 에릭 크립키 (Eric Kripke) - 쇼러너 · 2019
1. 어릴 적 나는 슈퍼맨을 진심으로 믿었다. 하늘을 나는 빨간 망토, 총알도 튕겨내는 가슴팍, 그리고 악을 용서하지 않는 정의로움. 그런데 언젠가부터 의문이 싹텄다. 저 남자, 왜 안 늙지? 저렇게 강한 존재가 왜 하필 기자로 위장해 살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가진 자가 과연 ‘선’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아마존의 시리즈 ‘더 보이즈’는 정확히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2. 가스 에니스와 대릭 로버트슨의 동명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에서 슈퍼히어로는 대기업 ‘보트 인터내셔널’의 자산이다. 그들의 영웅적 행위는 철저히 기획된 PR이고, 구조 현장은 촬영 세트며, 인명 피해는 법무팀이 처리할 ‘리스크’에 불과하다. 파일럿 첫 장면에서 주인공 휴이(잭 퀘이드)의 여자친구는 슈퍼 스피드 히어로와 부딪혀 순식간에 핏덩이로 변한다. 남는 건 손에 쥐어진 손가락 두어 개. 시리즈는 그렇게 선포한다. 여기서 민간인의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민원이라고.
핵심은 ‘세븐’이라 불리는 최정예 히어로 팀, 그중에서도 리더 홈랜더다. 슈퍼맨의 외양을 빌렸으나 내면은 정반대다. 앤서니 스타가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성조기 망토를 휘날리며 애국의 아이콘 행세를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유아적 분노와 끝없는 인정 욕구로 가득 찬 괴물이다. 《버라이어티》의 대니얼 다다리오는 “도시를 평정할 힘을 지녔으나 정서 조절 능력은 유아 수준”이라 썼다. 홈랜더가 웃을 때 관객은 웃을 수가 없다. 저 미소가 언제 살의(殺意)로 전환될지 예측 불가능하니까.
3. 칼 어번이 연기하는 빌리 버처는 홈랜더의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그 역시 복수에 미쳐 있고, 도덕적 경계는 언제든 넘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영국식 욕설을 기관총처럼 갈기는 이 남자에게서 관객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버처의 분노가 정당해서가 아니다. 우리 안에도 권력자에게 중지를 세우고 싶은 충동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잭 퀘이드의 휴이는 그런 버처에게 끌려들어가는 평범한 청년이다. 평범하기에 관객의 분신이 된다. “나도 저 상황이면 저렇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끈질기게 유발한다.
에린 모리아티가 연기하는 스타라이트는 이 잔혹한 세계의 도덕적 닻이다. 어린 시절부터 ‘세븐’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정작 꿈을 이룬 순간, 그 꿈이 악몽임을 깨닫는다. 동료로부터의 성적 강요, 기업의 이미지 조작, 자신이 신처럼 떠받들던 영웅들의 민낯. 숭배(崇拜)와 환멸(幻滅)이 동전의 양면임을 그녀는 온몸으로 배운다.
4. ‘더 보이즈’가 단순한 슈퍼히어로 해체극에 머물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 시리즈는 권력의 본질을 묻는다. 누가 영웅이고 누가 악당인가. 망토를 입으면 선인가. 뉴스에 나오면 정의인가. 기업이 밀어주면 영웅인가. 시리즈 속 홈랜더는 이렇게 말한다.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네가 뭘 생각하든, 난 상관없어.”
그 대사가 섬뜩한 건, 저 말을 할 법한 누군가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