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1** —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 · 2008

다크 나이트 (2008) 이미지
「다크 나이트」 (2008) 이미지 © TMDb

어떤 영화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고들 말한다. 나는 이 표현을 오래 경계해왔다. 대개 그 말의 속뜻은 “이 영화는 당신이 무시해온 장르인데 의외로 괜찮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치고는 깊다, 공포영화치고는 잘 만들었다—칭찬인 척하는 편견이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를 다시 보고 나니, 나 역시 결국 비슷한 말을 하게 됐다. 내가 경계하던 그 함정에 스스로 빠진 셈이다. 변명하자면, 이 영화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2

히스 레저의 조커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이 쏟아졌다. 《뉴욕 타임스》의 마놀라 다기스는 그를 “태초의 파괴력 같은 존재”라고 썼다. 과장이 아니다. 레저가 창조한 조커는 기원을 거부하는 캐릭터다. 그는 자신의 흉터에 대해 매번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어떤 버전에서는 아버지가, 어떤 버전에서는 아내가 등장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기원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선언이다. 이 인물에게 중요한 건 오직 현재의 아름다운 혼돈뿐이다. 만화책 악당이 철학적 테러리스트로 변모하는 순간을 우리는 여기서 목격한다. 레저는 웃는 얼굴의 분장 아래서 전혀 웃지 않는다. 그 불일치가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조커에게 설득당할 뻔했다. 세상이 정말 그렇게 썩어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보니 여전히 설득력이 있어서 곤란하다.

3

놀란은 이 영화를 마이클 만의 <히트>처럼 만들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다크 나이트>는 슈퍼히어로 영화라기보다 범죄 서사시에 가깝다. 정교한 강탈 계획들, 피할 수 없는 도덕적 타협들, 영웅과 악당의 거울 같은 대치. 월리 피스터의 IMAX 촬영은 고담 시티를 판타지가 아니라 실재하는 미국 대도시로 그려낸다. 아론 에커트가 연기한 하비 덴트의 추락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고담 전체의 몰락이며, 어쩌면 미국의 몰락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감시 사회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영웅은 어디까지 더러워져도 되는가—은 9/11 이후 미국의 불안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놀란은 이 무거운 주제들을 152분에 욱여넣었다. 간혹 대사가 철학 논문 발췌문처럼 들릴 때도 있다. 그러나 야망(野望)과 치졸(稚拙)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놀란은 대체로 그 선의 안전한 쪽에 서 있다.

4

크리스찬 베일의 배트맨은 정작 자기 영화에서 점점 주변으로 밀려난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의도다. 영웅은 스스로를 지워야 한다. 그래야 도시에 희망이 남는다. 영화의 마지막, 배트맨은 하비 덴트의 죄를 뒤집어쓰고 밤 속으로 도주한다. 고든 경감이 아들에게 말한다.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영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영웅이야.” 요즘 이 대사가 자주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 어떤 영웅을 감당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