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피터 잭슨의 도박** —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 피터 잭슨 (Peter Jackson) · 2001
이 영화는 실패해야 마땅했다. 뉴질랜드 출신의 B급 호러 감독이 20세기 영문학의 성전(聖典)을 건드리겠다고 나섰을 때, 전 세계 톨킨 신자들의 반응은 분노와 조롱 사이 어딘가였다. 원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 소설을 영상으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도박인지.
세 편 동시 촬영이라는 전대미문의 방식, 원작을 모르는 관객까지 끌어안아야 하는 상업적 압박, 그리고 무엇보다 수십 년간 상상 속에서 중간계를 건설해온 광신도들의 눈높이. 실패의 공식이 너무 완벽했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었다.
공포의 계보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킴 뉴먼은 피터 잭슨의 공포영화 감독으로서의 배경이 이 영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날카로운 분석이다. 잭슨은 ‘고무인간의 최후’(1987)로 데뷔한 사람이다. 외계인을 도끼와 톱으로 신나게 도륙하는 장면들로 가득한, 제목부터 삼류인 그 영화 말이다.
그런데 이 악취미의 유전자가 ‘반지의 제왕’에서 날개를 펼치자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모리아 광산 시퀀스를 보라. 동굴 깊숙이 울리는 북소리,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고블린 무리, 그리고 불꽃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발로그와의 대결. 잭슨은 PG-13 등급의 제약 안에서 자신의 전작들에 담았던 내장 터지는 공포를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다만 이번엔 피 대신 도덕적 무게가 흘렀다.
반지악령들의 연출도 마찬가지다. 텅 빈 후드, 끔찍한 비명. 명시적인 괴물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잭슨이 호러 장르에서 연마한 기술의 산물이다. 풍산에서 프로도를 추격하는 시퀀스의 지속적 긴장감은 어떤 블록버스터에서도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반지라는 배우
이 영화에서 가장 탁월한 연기를 펼친 존재는 배우가 아니다. 반지 그 자체다. 잭슨은 반지를 하나의 캐릭터로 연출했다. 반지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사운드 디자인이 비틀리고, 세계가 늘어나고 왜곡된다. 금빛 표면은 거의 심장처럼 고동(鼓動)한다. 프로도(일라이저 우드)가 반지의 유혹과 싸우는 장면들은 공포영화의 문법으로 촬영되었다. 도덕적 알레고리가 장르적 쾌감으로 번역된 드문 사례다.
간달프 역의 이언 맥켈런이 성취한 것도 비범하다. 전 세계 수천만 독자의 상상 속에 이미 거주하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실패가 예정된 임무다. 어떻게 연기하든 누군가는 ‘내가 상상한 간달프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맥켈런은 우주적 권위와 할아버지의 온기를 동시에 담아냈다. 독자들이 상상한 간달프와 다르면서도, 독자들이 상상한 바로 그 간달프였다.
난쟁이의 서사시
잭슨은 영화의 끝을 승리가 아닌 분열로 맺는다. 원정대는 부서지고, 간달프는 추락하고, 보로미르(숀 빈)는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프로도는 홀로 모르도르를 향해 떠난다. 관객은 카타르시스 대신 상실감을 안고 극장을 나선다.
여기서 잭슨이 이해한 톨킨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 이야기는 영웅 서사가 아니다. 키 작고 겁 많은 호빗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버리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야기다. 절대권력은 얻는 것보다 내려놓는 것이 백 배 어렵다는, 권력의 부패와 희생의 대가에 대한 철학적 명상이다. 서사시의 외피 안에서 도덕적 공포영화가 작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이 영화는 불가능을 성취했다. 원작의 철학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오락영화로 기능했고, 대중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진지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삼류 호러 감독이 문학의 성전을 건드렸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그것은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