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침몰(沈沒)의 역학 — 타이타닉
「타이타닉」 (Titanic) · 제임스 카메론 (James Cameron) · 1997
잠수정의 조명이 해저 3,800미터를 훑는다. 80년 묵은 녹슨 선체가 어둠 속에서 윤곽을 드러낸다. 카메라가 창문을 뚫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흩어진 도자기 파편과 찌그러진 금속 프레임이 보인다. 그 위로 소녀의 누드 데생이 천천히 화면에 잡힌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은 그렇게 시작한다. 죽음의 바닥에서 사랑의 흔적을 건져 올리는 영화라는 사실을 첫 5분 안에 각인시킨다.
1. 2억 달러의 도박
1997년, 2억 달러는 영화 한 편의 제작비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거액(巨額)이었다. 「워터월드」(1995)의 예산 초과로 할리우드 전체가 경악하던 시절, 카메론은 그 두 배를 들여 배 한 척을 침몰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무모함이 아니라 집요함이었다. 그는 실물 크기의 타이타닉을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에 건조하고, 선체의 리벳 하나, 1등실 식기의 문양까지 1912년 도면대로 재현했다. 빌 팩스턴이 침몰 현장을 직접 잠수해 촬영한 푸티지와 CG 합성이 완벽히 봉합된 결과물은 당대 시각효과의 정점을 찍었다.
재난 영화가 흔히 빠지는 함정—기술의 과시가 서사를 압도하는—을 카메론은 피해 간다. 배가 빙산에 부딪히는 순간은 영화 중반 90분 지점에 온다. 그전까지 관객은 배 위의 인간군상(人間群像)을 탐색하고, 1등실 만찬장의 위선과 3등실 무도회의 생기 사이를 오가며 계급의 지형도를 익힌다. 충돌이 실제로 터졌을 때 비로소 관객은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의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3시간 15분의 러닝타임은 카메론이 관객에게 감정 투자를 강제하는 시간이다.
2. 로맨스의 공학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케이트 윈슬렛)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라는 지적이 있었다. 《뉴욕 타임스》의 재닛 매슬린은 “압축된 시간 안에서 진정성을 느끼게 만든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를 언급했는데, 그 표현이 핵심을 찌른다. 대본은 공식적이다. 계급 장벽, 해방의 순간, 비극적 이별—이 구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공식 자체가 아니라, 공식이 진심처럼 느껴지느냐이다.
윈슬렛의 로즈는 억눌린 아가씨의 전형에서 출발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생존의 주체로 변모한다. 잭의 죽음 이후 구조선을 향해 헤엄치는 장면에서 그녀는 더 이상 구원받는 여성이 아니다. 디카프리오는 청춘의 낙관주의를 극한의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인물로 잭을 조형했다. 둘의 연기는 대본의 한계를 넘어선다. 카메론이 의도했든 아니든, 배우들의 즉흥성이 기계적 각본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계급 비평은 침몰과 함께 문자 그대로 실현된다. 3등실 승객들이 갇힌 철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당대 관객에게 불편함을 안겼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선박 사고에서 가난한 자가 먼저 죽는 것은 기록된 사실이다. 카메론은 그 사실을 오락 영화의 문법 안에 배치했다.
3. 침몰 이후
빌리 제인이 연기한 약혼남 칼은 희화화(戲畫化)의 경계를 넘는다. 한 영국 평론가는 “콧수염을 비트는 악당”이라고 평했는데, 그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노년의 로즈와 보물 사냥꾼 빌 팩스턴의 대화로 이루어진 프레이밍 디바이스도 군더더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액자 구조가 없었다면 영화는 30분 짧아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1시간의 침몰 시퀀스는 모든 결함을 덮는다. 배가 둘로 쪼개지고, 승객들이 수직으로 떨어지며, 해수면에 떠오른 시신들 사이에서 단 한 척의 구명보트가 돌아오는 장면은 재난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극점이다. 카메론은 시인이 아니다. 그러나 대중영화의 감정 문법을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결국 「타이타닉」은 기술의 승리인 동시에 감정의 승리이다. 2억 달러로 배를 가라앉히는 것은 할 수 있다. 3시간 동안 관객을 울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카메론은 둘 다 해냈다. 이 정도면 칼럼니스트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영화를 보며 코끝이 시큰했다는 사실만 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