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장난감의 불안, 혹은 대체 가능성의 공포 — 토이 스토리
「토이 스토리」 (Toy Story) · 존 라세터 (John Lasseter) · 1995
1
‘토이 스토리’는 어린이 영화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만을 위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뉴욕 타임스》의 자넷 매슬린은 이 영화를 두고 “우정과 경쟁에 대한 놀랍도록 정교한 이해”라 평했는데, 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다. 이것은 대체 가능성에 대한 공포를 다룬, 성인을 위한 심리극이다.
카우보이 인형 우디는 주인 앤디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번쩍이는 우주 비행사 버즈 라이트이어가 등장한다. 우디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질투(嫉妬)와 불안(不安)이 플라스틱 얼굴 위로 번진다. 장난감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은 분명 불안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2
1995년, 픽사는 최초의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는 기술적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감독 존 라세터가 진짜로 성취한 것은 따로 있다. 디지털로 빚어낸 인형들에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감정을 불어넣은 것이다.
톰 행크스가 목소리를 맡은 우디는 허세와 취약함 사이를 오간다. 팀 앨런의 버즈는 자신이 진짜 우주 비행사라 믿는 망상 속에 살다가, 자신이 대량생산된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너진다. 이 장면이 굴욕이 아니라 애잔함으로 다가오는 건, 영화가 그를 조롱하지 않고 끌어안기 때문이다.
조연들도 각기 제 몫을 한다. 돈 리클스가 연기한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의 냉소, 월리스 숀이 성대를 빌려준 공룡 렉스의 신경증. 《가디언》의 데릭 맬컴이 “제한된 등장 시간에도 뚜렷한 개성을 부여받았다”고 쓴 것은 과찬이 아니다. 이 영화는 기술이 서사를 위해 복무(服務)하고, 유머가 캐릭터를 위해 봉사(奉仕)하는 드문 사례다.
3
우디와 버즈는 결국 친구가 된다. 뻔한 결말이라고? 그렇다. 하지만 그 여정이 뻔하지 않다. 둘은 각자의 공포와 마주해야 했다. 우디는 자신이 언젠가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버즈는 자신이 애당초 특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 인정 위에서만 우정은 가능했다.
솔직히 나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아닌가” 하며 얕봤다. 틀렸다. 직장에서 후배에게 밀릴까 전전긍긍하는 중년, AI에 대체될까 잠 못 이루는 노동자, 연인에게 버림받을까 눈치 보는 연애 초보—우리 모두는 우디다.
장난감은 주인이 바뀌면 그만이지만, 인간은 대체된 뒤에도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우정이 필요하다. 토이 스토리가 30년 가까이 살아남은 이유가 여기 있다. 장난감들의 이야기인 척하며, 사실은 우리의 불안을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