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애프터 3: 독(毒)을 사랑이라 부르는 시대의 자화상
「애프터 3」 (After We Fell) · 캐슬 랭던 (Castille Landon) · 2021
이 영화는 실패했다
‘애프터 3’는 실패한 영화다. 흥행이 아니라 윤리에서.
안나 토드의 왓패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는 전 세계 십대 소녀들의 심장을 훔쳤고, 세 번째 편까지 만들어질 만큼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인디와이어》가 지적했듯, “이 영화가 예술적 성취인지 효과적인 상품 납품인지는 전적으로 관점에 달려 있다.” 나는 후자라고 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위험한 상품이다.
반복의 굴레, 혹은 착취의 공식
테사와 하딘. 이 커플의 서사는 세 편에 걸쳐 똑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 하딘이 소유욕과 감정 폭발을 보인다.
- 테사가 상처받고 떠나려 한다.
- 하딘이 “널 사랑해서 그래”라고 말한다.
- 테사가 용서하고 돌아온다.
감독 캐슬 랭던은 전작의 로저 컴블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유럽의 아름다운 배경과 세련된 화면을 만들어냈다. 조세핀 랭포드는 테사 역에 진정성 있는 취약함을 불어넣었고, 히어로 파인즈 티핀은 우울한 강렬함을 효과적으로 연기했다. 그러나 아무리 연기력이 좋아도 대본이 그들을 배신한다. 가족의 비밀, 런던 이주 문제—새로운 갈등처럼 포장되었지만 결국 “헤어질 듯 말 듯”의 변주에 불과하다. 소프 오페라의 뿌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독점(獨占)과 독애(毒愛)
문제는 이 영화가 하딘의 소유욕과 감정적 폭력성을 경고 신호가 아닌 “깊은 사랑의 증거”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가디언》의 표현을 빌리면, “영화는 독성 관계의 역학을 낭만적 열정의 정점으로 포장한다.”
테사는 끊임없이 용서하고 돌아간다. 영화는 이것을 사랑의 위대함으로 그린다. 하딘이 질투심에 폭발할 때, 카메라는 그의 눈물 젖은 눈을 클로즈업하며 관객의 연민을 구걸한다. 관계를 끝내려는 테사의 시도는 매번 “진정한 사랑 앞에서의 일시적 방황”으로 처리된다.
이것이 왜 위험한가? 십대 관객들에게 이 서사가 “사랑의 교과서”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거울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의 연애 폭력 통계를 떠올렸다.
2023년 한국여성의전화 조사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상당수가 “사랑한다고 해서”, “변할 것 같아서” 관계를 지속했다고 답했다. 가해자의 폭력성을 “열정”으로, 통제를 “관심”으로 오해하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다. ‘애프터’ 시리즈는 이런 오해의 판타지 버전이다. 예쁜 포장지로 감싼 독약.
한국에서도 “나쁜 남자” 서사는 오랜 역사를 가졌다. 드라마 속 재벌 2세는 여주인공의 손목을 잡아끌고, 영화 속 조폭은 폭력으로 사랑을 증명한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니까”, “판타지니까”라고 말하지만, 판타지가 현실의 기대치를 만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애프터 3’의 전 세계적 흥행은 이 서사에 대한 수요가 문화권을 초월한다는 증거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 영화가 조용히 소비될 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우리 사회는 “독점”과 “사랑”을 얼마나 구별하고 있는가.
팬덤이라는 면죄부
물론 이 영화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있다. “원작 팬들을 위한 영화인데 왜 잣대를 들이대느냐”는 항변이다. 맞다. 이 영화는 팬덤을 정확히 이해하고, 팬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납품한다. 유럽 로케이션, 침대 신, 눈물 젖은 재회. 알고리즘처럼 계산된 감정 자극.
그러나 상업적 효율성이 윤리적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담배 회사가 “흡연자를 위한 제품”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폐암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듯이.
‘애프터 3’는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알고 있다. 모르는 척하는 것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며 생각했다. 테사와 하딘의 네 번째 이야기가 제작 중이라고 한다. 그들은 또다시 헤어졌다 만나고, 상처 주었다 용서하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것이다.
그렇다면 묻는다. 우리는 언제쯤 “떠나는 것도 사랑”이라는 서사를 갖게 될까?